朴정부 밀어붙이던 성과연봉제 '백지화 임박'

법원·공기업도 변화 뚜렷… "폐지하려면 지금이 적기, 勞政 대화는 필수"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개혁이 속도를 내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됐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도 1년여 만에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 노동계도, 법원도 '불법 성과연봉제는 무효' 입 모아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성과연봉제 저지 철도-건강보험노조 수도권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성과연봉제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이 모인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을 환영하고, 특히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정부 공공부문 정책 중 교섭대상인 고용, 근로조건에 대해 노정 간 협의 테이블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성과연봉제의 경우 도입 과정에서 사측의 강압으로 노조가 형식적인 동의를 한 경우, 또 이미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기관평가에 점수가 반영된 사례 등을 정리하려면 노정 대화를 통한 폐지가 효율적이라는 논리다.

같은 날 법원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 노동자들이 공사를 상대로 낸 취업규칙 무효확인 소송에서 공사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법원이 노조가 낸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첫 본안 소송 판결에서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특히 해당 재판부는 노동자들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기각했는데, 정작 판결에서는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은 다른 성과연봉제 관련 소송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 노동계 반발 무시하고 성과연봉제 사활 걸던 박근혜 정부에서 '상전벽해'

(사진=청와대 제공)
불과 반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는 노동정책 핵심과제였던 성과연봉제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였다.

당시 정부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철밥통 복지부동'을 개선해야 한다며 연공서열에 따라 같은 비율로 임금을 올리는 호봉제 대신 개인 성과별로 차등을 줘 연봉 중 일부를 성과급 인센티브로 지급해야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공공기관에 '권고'했지만, 실제로는 수차례 기관장들을 소환해 점검 회의를 열고, 도입 여부를 기관 평가 등과 연결해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했다.

공공기관들 역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극심한 반발에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서둘렀고, 일부 기관에서는 노조 동의를 받지 않거나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날치기' 도입을 벌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정권 교체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황은 180도 뒤바뀌었다. 문 대통령이 선거 기간 성과연봉제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 원칙을 밝히면서 사실상 폐기의 뜻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대신 문 대통령은 개인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운 성과연봉제도, 타성에 젖기 쉬운 기존 호봉제도 아닌 직무 특성에 따라 임금 체계를 달리하는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을 공약했다.

또 이를 위해 노사 합의기구를 조직해 시장임금과 배분임금(이익공유분)을 분석한 뒤 '산업 단위의 표준 직무급 체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경우 성과연봉제의 폐단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직무를 맡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 해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성과연봉제 폐지에 혼선? 더 큰 혼란 막으려면 폐지 서둘러야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공기업 경영진들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코레일과 인천공항공사,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 10곳을 불러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다음날인 18일, 코레일 홍순만 사장은 "성과연봉제와 조직구도 개편에 대해 정부의 방침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만 해도 홍 사장은 "성과연봉제는 합법"이라며 철도노조의 사상 최장기 파업에도 강경일변도로 일관했지만,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 것이다.

다만 잇따른 성과연봉제 철회 움직임에 일부 공기업 경영진들은 1년여 사이에 2번이나 제도를 바꾸면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우려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야 할 것"이라면서도 "지난해 연말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시행했는데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더 큰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성과연봉제를 철회해야 할 적기라고 강조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박준형 정책실장은 "대부분 노동자에 대한 성과 평가가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그에 따른 성과급 차등 지급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반면 1년, 2년이 지나 성과급 지급이 기관평가에 반영되고, 노사갈등의 골이 깊어진 뒤에야 성과연봉제를 중단하려 하면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의 승소 판결에 대해서도 "1심에서는 각 법원마다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고, 결국 대법원까지 소모적인 법정공방을 벌일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서둘러 정리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도입을 강행했다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 성과연봉제 폐지에 동의하되 반드시 노정 대화를 통해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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