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수는 오재일(31 · 두산)이었다. 오재일은 OPS 1.003으로 6위였다. 장타율은 그보다 높은 5위(5할9푼2리)였고, 출루율이 12위(4할1푼1리)였다. 홈런왕 최정(SK)과 '96억 원의 사나이' 박석민(NC), 최고 포수 강민호(롯데), 윌린 로사리오(한화) 등 쟁쟁한 선수들도 특급 타자의 상징인 OPS 1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지난해 오재일은 대단했다. 105경기 출전과 타율 3할1푼6리 27홈런 92타점 등 모든 기록이 개인 최고였다. 100경기 출전도, 주전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것도 처음이었다. 만년 좌타 거포 유망주의 잠재력이 터진 오재일은 두산 통합 우승의 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오재일은 올해 거짓말처럼 주저앉았다. 17일까지 30경기 타율 1할9푼1리 1홈런 12타점에 머물렀다. 출루율과 장타율은 3할은 밑돌았다. 2군에도 다녀왔으나 소용이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 두산이 승률 5할 언저리를 맴돌게 된 한 원인이었다.
딱히 부상도 없었다. 오재원, 박건우, 김재호 등 다른 주전들처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다녀온 것도 아니었다. 국대 후유증도 아니었다. 오재일 미스터리라 할 만했다.
경기 후 오재일은 비로소 길고 길었던 부진에 대한 자체 진단을 들려줬다. 스트라이크존 확대와 같은 외부적 요인은 아니라고 했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었으나 결국 원인은 자기 자신에 있었다.
오재일은 일단 "지난 두 경기 등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개인적인 것보다는 팀이 2연패 중이라 이겨야 되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집중한 게 잘 돼서 기쁘다"고 후련한 소감을 밝혔다. 오재일은 16일 승부처 번트 실패, 17일 4타수 무안타 등 2연패의 한 원인이었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잘 하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오재일은 "처음부터 지난해보다 더 잘 하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면서 "하던 대로 내 것을 해야 했는데 욕심이 생기다 보니 스스로가 급해졌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사실 오재일의 풀타임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향상보다는 유지가 먼저였을 터였다. 꾸준히 지난해의 성적을 몇 시즌 냈다면 모를까, 과욕이었다. 오재일은 "(스프링캠프에서) 기술적인 것도 많이 훈련했는데 스스로 무너진 거 같다"면서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잡동작도 생기고 제 스윙도 안 나오면서 급해진 게 가장 컸다"고 부진을 돌아봤다.
점점 지난해 느낌을 찾아가고 있다. 오재일은 "그동안 잘 맞은 타구가 잡히거나 파울이 돼 안 풀린다 생각도 했지만 스윙이 준비한 대로 조금씩 나오고 있다"면서 "좋은 타구가 많이 나와 타이밍도 맞아가는 게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오재일은 "이제 홈런 1개를 쳤다고 지난해와 비교해 얼만큼 올라왔는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 정확히 수치로도 말할 수 없다"고 자만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래도 내일부터는 자신감은 확실히 생길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재일은 지난해 김재환, 박건우에 다소 가려졌지만 두산의 히트 상품 중 하나였다. 과연 오재일이 슬럼프를 딛고 지난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재현할지 지켜볼 일이다. 두산의 반등을 위해서도 오재일의 부활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