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대회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골든볼을 수상했고, 1983년 대회에서는 베베토와 둥가(브라질)가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마라도나는 1986년, 베베토와 둥가는 1994년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1987년 대회에에서는 다보르 슈케르(크로아티아)가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1991년에는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호베르투 카를로스(브라질)가 등장했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도 아르헨티나 소속으로 1991년 대회에 출전했다.
이어 1995년 대회에는 라울(스페인)이 활약했다. 1997년에는 프랑스에서 스타들이 대거 배출됐다.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등이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또 후안 리켈메(아르헨티나), 마이클 오언(잉글랜드)도 같은 대회에 출전했다. 1999년에는 호나우지뉴(브라질), 사비(스페인), 디에고 포를란(우루과이)이 나타났다.
2000년대는 아르헨티나 시대였다. 2001년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11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2005년에는 리오넬 메시가 골든볼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에만 세 차례 우승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도 2007년 아르헨티나 우승 멤버.
이후 유망주들의 등장이 줄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일찌감치 스타가 된 선수들이 많았던 탓. 하지만 2011년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 2013년에는 폴 포그바(프랑스)가 배출됐다.
하지만 U-20 월드컵에 이어 월드컵까지 우승한 선수는 고작 10명이다.
2007년은 한국에서도 골든 멤버가 나왔다. 기성용(스완지 시티),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박주호(도르트문트)가 당시 주축 멤버였다.
올해 대회도 수많은 유망주들이 이름을 알릴 준비를 마쳤다.
다만 이미 스타로 성장한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AS모나코), 마커스 래쉬포드(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은 소속팀에서 출전을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유망주들이 한국으로 향했다.
우루과이는 스페인 3대 클럽 유망주인 페데리코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 산티아고 부에노(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니콜라스 스키아파카세(FC바르셀로나), 그리고 유벤투스 소속 호드리고 벤탄쿠르가 눈에 띈다. 이들은 남미 예선에서 우루과이를 1위에 올려놓았다.
장 케빈-오귀스탱(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역시 최고 유망주로 손꼽힌다. 지난해 U-19 유럽 챔피언십 우승 멤버로 음바페(5골)와 함께 11골을 합작했다. 예선을 포함하면 11경기 11골의 놀라운 득점력이다.
첼시 소속 도미닉 솔란케(잉글랜드)와 FIFA가 지목한 유망주 루터 싱(남아공)도 스타 탄생에 도전한다. 일본에서는 15세의 나이로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구보 다케후사(FC도쿄)가 최고 유망주다. 구보는 J리그 최연소 출전 및 득점 기록 보유자다.
스타 2세들도 아버지 넘어서기에 나선다. 세계적 공격수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의 아들 조나탄 클린스만(미국), 릴리앙 튀랑(프랑스)의 아들 마르쿠스 튀랑(프랑스)도 U-20 월드컵에 출전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사령탑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들 지오반지 시메오네도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망주는 역시 FC바르셀로나 듀오 이승우(19)와 백승호(20)다. 그동안 FC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영입 규정 위반으로 인한 FIFA 징계로 얼굴을 알릴 기회가 적었다. 제대로 이름을 떨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