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시민과 정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기존의 관료적이고 상명 하달식에 익숙한 ‘깜깜이 정부’로는 다가올 미래에 대처할 수 없으며, 정부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평범한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정부를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이의 법칙Joy’s law’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이의 법칙’이란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빌 조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똑똑한 사람은 대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법칙이다. 과거 정부는 권력과 정보를 움켜쥐고 일방향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려 했지만, 정보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지금 세상에서는, 최첨단 정보통신기기로 무장한 국민의 지성을 정부의 문제 해결에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09년 취임 선서 후, 데이터 투명성에 관한 메모를 공개하며 이 관점을 지지했다. 오바마의 이 메모장은 ‘투명’, ‘참여’, ‘협업’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마는 우선 “정부는 투명해야 한다”고 이 메모에 썼다. 국민이 언제든 공공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그는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썼다. 정책 수립 과정에 국민을 참여시켜 그들의 전문성과 지식을 정부에 전달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는 “정부는 협업해야 한다”고 썼다. 정부 기관 사이의 협업은 물론이고, 민간 기구 및 기업, 개인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메모는,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히는 핵심 내용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저자는 공직에 있으면서, 투명한 정부 운영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숙인이 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관련 데이터를 수집했고, 시정에 대한 시민의 견해를 듣는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에서, 일부 이권 단체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SF 리슨’이라는 휴대 장치를 도입했으며, 시정 연설을 유튜브에 올려서 시민과 소통하려고 하는 등 개혁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현장감 넘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서술했다.
저자는, 공직자로서 ‘완전히 투명해지려는’ 자신의 노력이 많은 저지와 조롱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혁신 기술 도입을 통한 시민 소통이나 공공 데이터 개방으로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야말로 정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시민이 직접 나서 공공의 문제를 푸는 소위 ‘시빅해킹civic hacking’으로 오클랜드 시의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준 ‘크라임스포팅’의 사례, 허리케인 ‘아이린’이 동부 해안을 덮치자 관련 데이터를 시 정부의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해서, 시민들로 하여금 사전에 재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뉴욕 시의 사례, 실험적 전투 지원 차량XC2V 개발을 앞두고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경연을 열어, 차량 개발 비용과 기간은 단축하고 최상의 결과를 얻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사례 등이 그것이다.
국민 참여에 따른 정부 혁신의 사례를 이처럼 다양하게 수집한 배경에는, 디지털 시대의 정부 혁신 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한 저자의 노력이 있다. 그는 이 책 집필을 위해 정치, 기술, 사회, 언론, 예술 등 분야를 망라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서 인터뷰했다. '투명정부' 속에는 저자 자신의 공직 체험에 더해,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해 얻은 통찰이 녹아 있다.
책 속으로
시장과 부지사를 거치면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은 온갖 이유를 여러 기관에서 들어왔다. “예산이 없어요!”, “직원이 모자라요!”, “방금 이사 와서 아직 짐을 정리하지 못했어요!”, “담당자가 퇴사했는데, 데이터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감사가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전혀 짬이 나지 않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생색만 내는 데 최소한 어디까지 성의를 보여야 하는지 궁리하거나, 공개 시기를 연기하면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잊히지 않을까 하며 야단법석을 떤다. 시간을 질질 끌거나 변명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들은 왜 꺼리는 걸까?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_본문 87쪽
“더 이상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화창한 오후에 조지 클루니가 내게 말했다. 조지 클루니는 공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더불어 정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기술 시대에 대중과 정치 사이에 단절이 생기는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요즘은 누구나 페이스북을 하기 때문에 정말 멍청한 짓,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홀딱 벗고 춤을 추거나 하는 행동을 하면 결코 사적인 존재로 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공인이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더는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소유죠. 기존 사생활 보호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끔찍한 일이지만,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입니다.” _본문 102~103쪽
미국인은 늘 백마 탄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를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끌고 우리가 따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바뀌고 있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이나,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의 언론인 월터 크롱카이트가 어떤 말을 믿으라고 알려주는 시대는 가버렸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대중문화나, 기준으로 삼을 만한 정치적 견해가 없다. 주요 방송사나 일간 뉴스에서 정보를 얻는 대신 온갖 종류의 정보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이렇게 파편화된 시대는 없었다. _본문 266쪽
개빈 뉴섬 , 리사 다키 지음 | 홍경탁 옮김 | 항해 | 312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