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되면 운영 어려워지나

부채 늘어나게 돼 자본확충 필요하지만 보험금 지급여력과는 무관

보험사들이 2021년으로 예상되는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 17(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17)도입에 대비해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새 회계기준은 보험사들의 부채에 대해 원가가 아닌 시장금리를 반영한 시가로 평가하게 한다.

따라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된다면 과거 높은 고정금리로 저축성 보험상품을 많이 판 생명보험사들은 부채가 현재보다 훨씬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선 재무구조를 탄탄히 하기 위해 자본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부채가 늘어나면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청구가 한꺼번에 될 경우 지급할 수 있는 돈, 즉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위험기준 자기자본(Risk Based Capital, RBC)'이 줄게 돼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 당장 이 회계기준이 도입된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2021년 도입 예정인데다 RBC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서 새 회계기준 때문에 보험사들의 지급여력이 줄어들어 우려스러운 상황이 초래될 공산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보험연구원 조재린 금융전략실장은 "IFRS17은 재무회계와 관련된 기준이고 RBC는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기준이어서 양쪽의 '자본' 개념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현재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가 새 RBC 기준을 만들고 있는데 '자본'의 개념을 다르게 설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보다 새 회계기준 도입은 보험회사들이 재무건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조 실장은 "보험사들이 IFRS17 도입에 대비해 새로운 계리 시스템 도입, 자본 확충 방안, 경영방식의 변화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IFRS17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 IASB)가 보험업계의 국제회계기준인 IFRS4를 확대, 보완하는 내용으로 기준서를 만들어 한국 시간으로 19일 발표하면 각국에서 이를 손질해 적용하는 절차를 통해 도입된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그동안 43개의 기준서를 발표했고 IFRS라는 명칭이 붙게 된 기준서로는 이번에 17번째 나오는 것이어서 17이라는 숫자가 붙게 됐다고 한다.

전세계 105개 국가에서 이 위원회가 발표한 기준서들을 수용했고 우리나라에선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상의 규정 제정 등을 거쳐 2011년부터 기업의 회계기준으로 의무 채택하도록 했다.

IFRS 17의 핵심인 부채 평가 방식의 변화를 사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험사가 4년 만기가 되면 1,000만 원을 돌려주는 저축보험 상품을 예정이율 7%로 판매했다고 가정하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계약당시에 763만 원의 부채를 갖게 된다. (763만 원=1,000만 원/(1+7%)⁴)

현행의 원가평가 방식에서 이 부채는 1년후에는 816만 원(1,000만 원/(1+7%)³)이 되지만 IFRS17에 따르면 금리변동을 고려해야 한다. 만일 1년후 시장금리가 3%라면 이 부채는 915만 원(1,000만 원/(1+3%)³)이 돼 원가평가 방식보다 99만 원이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1년후 시장금리가 10%가 된다면 이 부채는 751만 원(1000만 원/(1+10%)³)이 돼 원가평가 방식보다 65만 원이 줄어든다.

국내 보험사들은 IMF사태 무렵 20%에 가까운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팔기도 했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IFRS17을 도입해 회계처리를 하게 되면 부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보험사들이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선 그만큼 자본을 더 늘려야 하고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이런 측면에서 부담이 클 수 있다.

생보 빅3중 삼성생명의 경우 "IFRS17이 도입되더라도 증자까지는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현재 별다른 자본확충 계획은 세우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한화생명은 지난달에 신종자본증권 5,000억 원어치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했고, 교보생명도 올해안에 해외에서 5억 달러(5,6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한화와 교보생명은 19일 발표되는 IFRS17의 기준서를 보고 검증 작업을 벌인 뒤 필요하면 추가 자본 확충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중소형 보험사들도 자본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 RBC 비율 하락으로 은행들의 방카슈랑스 판매 제한조치 등을 받기도 하고, 저축성 보험상품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은 흥국생명의 경우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권 발행으로 500억 원 가량 자본을 늘렸지만 앞으로도 계속 자본을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IFRS17 도입과 관련해 "저축성을 줄이고 보장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고, 추가 자본 확충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회계기준은 이와 함께 보험사들이 계약자로부터 받는 보험료 전액을 회계상 매출로 잡고 있는 것을 지양하고, 수익만을 매출로 잡도록 하고 있어서 보험사들의 외형이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새 회계기준 도입이 보험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보험사 재무회계상의 건전성과 연관된 이슈여서 금융소비자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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