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극우사이트에서 사용되는 비하 발언들이 SNS 등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 "정확한 의미 몰라, 재밌으니 따라 불러"
가사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내용을 '운지'라는 표현으로 희화화했다. 운지는 한자 '떨어질 운(隕)'과 '땅 지(地)'를 써 '땅으로 떨어지다'라는 의미의 인터넷 은어다.
이 학교 학생 최 모(15) 군은 "친구들과 장난치다보면 자살하라는 의미에서 '운지나해라'라는 일베식 욕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고 말했다. 스무 살이 되면 자신도 노 전 대통령을 따라 '운지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5·18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중학생 이 모(15) 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총을 쏴서 (광주) 시민들을 죽였는데, 그걸 잘했다고 말하는 애들이 많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권 모(16) 군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단순히 말이나 표현만 듣고 재미있다며 따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는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등에서 사용하는 '응딩이'나 '홍어 폭동'과 같은 특정인과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단어들도 쉴 새 없이 오고갔다.
이 학교 학생 김 모(15) 군은 "전라도 특산물이 홍어이다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기 위해 쓴다"면서 "'운지'와 '부엉이바위' 단어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쉬는 시간에 부르고 다니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 모(15) 군 역시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재밌어서 따라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 교사 강 모(28) 씨는 얼마 전 교실에서 학생들의 대화내용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6학년 남학생 3명이서 5·18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가 "칙칙폭폭 폭동이다, '땅크'로 진압했다"라며 낄낄대고 있었던 것.
강 씨는 "일부 극우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아이들이 필터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면서 "다른 반에도 이런 아이들이 15명 중 두세 명 꼴로 있어 갈수록 역사 비하 용어를 생각 없이 내뱉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일베에서는 수년 전부터 노 전 대통령과 세월호 희생자를 희화화하거나, 전라도를 비하하는 내용 등을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공해 공유돼왔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하나 왜곡도 여과 없이 쓰이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역사 비하 용어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과 6살 난 두 딸을 키우는 김 모(41) 씨는 "커 가는 아이들이 아직 바른 말도 다 배우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뜻도 제대로 모르는 단어에 노출돼 걱정이다"라고 밝혔다.
◇ 학생들 올바른 '역사·미디어교육' 절실
전문가들은 적절한 교육이 뒷받침 되지 못해 극우사이트에서 오고가는 비하 발언들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쓰인다고 지적한다.
전남대 5·18연구소 오승용 연구교수는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극우사이트에 올라온 내용물을 단지 재미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중요한 역사 현장을 직접 견학하는 등 현장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부 극우사이트에 올라온 내용물이 스마트폰을 통해 청소년에게 유입되는 만큼 학생들에 대한 미디어교육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이재경 교수는 "아이들에 대한 여과 장치나 건전한 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사회가 반성해야 한다"면서 "아이들이 비판적으로 미디어 내용을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장석준 교수도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데는 능숙할지 몰라도 역사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면서 "현재 자유학기제에만 있는 미디어교육을 정규교육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