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대법원장은 17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사법 행정의 최종 책임을 맡고 있는 제 부덕과 불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는 지난 3월 초 의혹이 불거진 이후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이 사태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 가운데 처음 나온 반응이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줄곧 국민 신뢰를 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고 내부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 또한 절실히 필요함을 강조하던 가운데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며 "법관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드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남기게 돼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 사법행정을 운영함에 있어 법관들 의견을 충실하게 수렴해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라며 "이번 사태를 맞아 향후 사법행정 방식을 환골탈태하려고 계획함에 앞서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법관들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각급 법원에서 선정된 법관들이 함께 모여 현안과 관련해 제기된 문제점과 개선책을 진솔하고 심도 있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며 "법원행정처도 필요한 범위에서 이를 최대한 지원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법부 파동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사법부 내 연구모임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개회한 학술 모임을 법원 행정처가 축소하도록 지시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연구회는 전국 법관을 상대로 '국제법 관점에서 본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 내용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여기에는 법원 인사제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 내부에선 양 대법원장을 "제왕적 대법원장"이라고 지적하며, 인사권 남용에 따른 재판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난 이모 판사를 통해 학술대회를 축소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번 일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법관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형식으로 사직했고, 이 상임위원은 사법연구 발령으로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다.
지난 15일에는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단독 판사들이 판사회의를 열고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는 등 양 대법원장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