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된 미 연방수사국장의 단 2장짜리 메모가 미국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여차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태블릿 PC'급 악재로 발전할 전망이다.
미 하원 정부감시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질 경우, 탄핵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그야말로 미국판 태블릿 PC가 되는 셈이다.
◇ 뉴욕타임즈, 코미 메모 존재 첫 보도
뉴욕타임즈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16일, '코미 메모'의 존재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기자는 문제의 메모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코미 전 국장의 측근이 메모 내용 일부를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었다.
"플린을 놔 주게. 그는 좋은 사람일세. 나는 당신(코미)이 이 사건을 그냥 놔 주길 바라네."
러시아 내통 의혹에 휩싸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된 다음날인 지난 2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전 FBI 국장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이같이 말했다.
당시 코미 전 국장은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을 비롯한 트럼프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말에 코미는 그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고만 말했다.
대통령의 강요에 가까운 요구에 놀란 코미는 대화가 부적절했다고 판단하고 2장짜리 메모를 작성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작성된 메모는 소수의 FBI 고위 관리들과 일부 가까운 지인들에게 공유됐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 방해에 해당한다는 것이 미국 정계와 법조계의 시각이다. 사법방해는 중범죄로 대통령 탄핵요건에 해당된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반역, 뇌물, 기타 중대 범죄 및 비행'으로 기소되면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사법방해는 중범죄"...들끓기 시작한 탄핵 여론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요청이 사법방해의 전형이라며 특별검사 임명, 탄핵 필요성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공화당 소속 중진 상원의원인 존 메케인 상원 군사위원장도 "트럼프 스캔들이 워터게이트 급으로 커졌다"고 비판했다.
미국 법조계에서도 조심스럽게 탄핵 요건 충족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는 에드워드 맥마혼 형사전문 변호사를 인용해 "친구가 기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사중단을 요구했다면 사법 방해에 해당되지만 국가기밀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요청한 것이라면 정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날 뉴욕타임즈 보도 직후 발표한 긴급성명에서 "코미나 다른 누구에게 플린 장군 관련 수사를 포함해 그 어떤 수사도 중단하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미국 하원 정부감독위원회가 나섰다. 공화당의 제이슨 샤페츠 하원 정부감독위원장은 앤드루 매케이브 FBI 국장 대행에게 정보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오는 24일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코미 전 국장 사이에 오간 대화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모든 형태의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
의회 조사에서 코미 메모에 담긴 내용이 사실로 밝혔지고, 코미 전 국장이 의회 청문회에 관련 증언까지 내놓을 경우, 사건은 제2의 워터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미 탄핵 여론도 비등하고 있다.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은 이날 미국 성인 남년 692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8%가 트럼프 탄핵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반대 41%보다 더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