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의 기억…"다시 포스트잇을 들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지난해 5월 21일 '강남역 묻지마 살인' 추모 현장인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헌화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지난해 5월 17일 새벽 1시를 넘긴 시각,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주점 건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로 왼쪽 가슴을 수 차례 찔린 채 살해됐다.

이 젊은 여성을 무차별 살해한 30대 남성 김모 씨는 범행 전 80여 분간 현장에 머물렀고, 그 사이 그를 지나쳐 간 여성은 모두 6명이었다. 더욱이 그는 범행 전에 흉기를 소지한 채 화곡역의 한 화장실에, 범행 이후에는 역삼동의 한 화장실에 머문 것으로 드러났다.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이유 없이 살해 당한, 일명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희생자를 추모하며 "내가 될 수도 있었다"고 외쳤다.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은 강남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추모 열기가 퍼져 나가면서, 한국 사회를 사는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의 실체는 구체화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혐오 세력과의 마찰도 빚어졌다. 추모 현장에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나타나 여성혐오 발언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민들과 논쟁을 벌인 탓이다. 당시 일베 회원들은 "남성혐오까지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 남자들이 모두 살인자인 것처럼 말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의 일탈로 벌어진 사건"이라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려 했다. 여성을 향한 범죄와 혐오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경고였다.

범인에게는 징역 30년형이 내려졌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1, 2심 재판부의 판단은 여성 범죄·혐오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일었다.

벌써 사건 발생 1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날을 잊지 않고 비뚤어진 혐오에 당당히 맞서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5.17강남역을기억하는하루행동'(5.17하루행동)은 오는 17일(수) '다시 포스트잇을 들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동에 나선다.

5.17하루행동 측은 먼저 이날 정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연다. 오후 3시 신촌 유플렉스 광장과 오후 5시 홍대 걷고싶은거리(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도 추모 행동을 이어간다. 특히 오후 7시에는 범페미네트워크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 문화제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가 열린다. 이날의 드레스코드는 검정이다.

5.17하루행동은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여성살해사건' 그후 1년,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변화를 촉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서로의 용기로, 큰 힘이 되어 돌아왔다"며 "5월 17일에 광화문, 신촌, 홍대 일대에서 함께 포스트잇을 들고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다시 함께 들자. 1년 전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메웠던 그 포스트잇처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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