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취임 후 사흘에 걸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정상들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갖고 잊혀졌던 한국의 존재감을 국내외에 확인했다.
전임 정부에 의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사드(THAAD)와 위안부협상 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의연한 대응으로 해결의 작은 실마리라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전통적 동맹인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로 건강한 동맹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고 취임 후에도 이런 기조를 지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선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해 양국관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위대한 동맹 관계'(not just good ally but great ally)"라는 평가와 함께 "북한 핵문제는 어렵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선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교민과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의 보복조치를 직접 언급했다.
중국은 이 통화에서 올해 처음 개최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한국을 초청함으로서 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 대화 채널을 마련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드보복'의 일환으로 이 포럼에 초대받지 못했다.
같은 날 이뤄진 아베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한다"며 재협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취임 축하차 걸려온 정상 간의 전화통화에서 이 정도의 메시지를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문가들은 민감하고 불편한 사안일지라도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할 말은 함으로써 대외 교섭력을 높이겠다는 기조 변화로 보고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외교의 우선 순위가 미중일이란 기조를 그대로 이어갔지만 국민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한 점이 차이점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주변 4강으로 불리면서도 그간 소홀해왔던 러시아 등과도 관계 강화를 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중국, 일본과의 횡축 외교에 머물지 않고 러시아, 인도, 아세안의 종축으로도 외연을 넓혀 외교적 활동 공간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마침 지난 11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취임 축하전화를 걸어온 것은 이런 구상에 더욱 힘을 싣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인도 측이 이 정도 수준의 의전을 제공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전임 정부에서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와 함께 MIKTA(5개 중견국 협의체)를 결성했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직접적 이해관계와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인도, 아세안, 러시아는 그 자체로도 거대 신흥시장으로서 경제적 잠재력이 클 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악화시 대체 카드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인도는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갖는 경제적 약점을 완화할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라며 "동북아시아에 머물러있던 외교의 지평을 넓혀보자는 의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중일러 4강 국가에 대한 당당한 외교를 펼치면서 인도 등 다른 국가들에도 외교를 확장하고 넓혀간다는 것이어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