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하는 文의 외교…코리아패싱 넘어 피스메이킹하나

"미중 자국 이기주의 미리 간파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직제개편을 통해 기존 외교안보수석실을 폐지하고 대신 국가안보실로 관련 업무를 이관해 남북관계와 안보전략, 외교정책을 하나의 통일된 기조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취임 직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정상들과도 잇달아 통화하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 협력을 요청하는 등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을 넘어 한반도 주변국 '피스메이커'(Peace maker)로의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 미··중일·러 정상 동시 통화…외교 주도권 회복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북핵문제 등 한반도 안보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한미 동맹에 대해 문 대통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동맹관계"(not just good ally but great ally"라고 화답했다.

양국 정상은 다음달 중 미국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목표로 상호 특사파견을 약속하는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속도전에 나선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1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이례적으로 먼저 건 당선 축하 전화통화에서도 "북핵문제 해결은 포괄적·단계적으로 하며 압박과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두 나라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본격적인 4강 외교의 닻을 올렸다.

취임사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외교정책의 1순위로 놓고 본격적인 '피스메이커'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모양새다.

일단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에 비하면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긴급배치 결정을 놓고 정치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군사적 효용성을 따지며 거세게 충돌했다.

북핵 위기를 군사적 대응으로 돌파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선택에 미국과 중국은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달았고, 이 과정에 한국 정부의 역할론은 실종됐다.

정작 남북 관계 당사자인 한국이 소외되면서, 미·중·일·러가 한반도 위기 대응 방식을 논의하는 외교 지형이 현실화됐고 일명 '코리아패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사드배치로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은 극에 달했고 중국 정부도 자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각종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한국은 외교 공백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 주변 강국과의 허니문 기간 자칫 毒 될 수도

문재인 정부가 취임 직후 국가안보실에 외교안보 전략을 총괄하는 청와대 직제개편까지 단행하면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은 적지않다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강한 압박과 '세컨더리 보이콧'(제재국가와 거래하는 다른 나라까지 제재하는 강력한 외교수단)까지 암시한 트럼프 행정부와 '햇볕정책'을 근간으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유화조치 필요성도 배제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당장 다음달 미국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되더라도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법을 놓고 두 정상이 이견 차이를 좁힐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시진핑 주석도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상호 협조 전제 조건으로 한반도 '사드배치 불가론'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을 설득할 일도 남겨진 숙제다.

일본과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실효성 여부를 놓고 향후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도 크다.

이런 가운데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조급증이 오히려 외교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미국에 공식 초청하고 시진핑 주석이 이례적으로 먼저 취임 축하 전화를 걸어온 것을 지나치게 우리 식으로 확대 해석해 당장이라도 북핵과 사드 문제를 일괄 해결할 수 있다는 오판이 자칫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의전 외교를 심리적으로 이용하는 데 아주 탁월한 나라"라며 "지난 정권 초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친근한 관계가 나중에 어떻게 파탄났는지 돌아보면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미중의 입장에서 사드 철수는 중국의 영향력을, 사드 운용은 미국의 영향력을 확인시키는 꼴"이라며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한반도에 서로의 힘을 투사하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이 오히려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문재인 정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을 간파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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