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곽도원이 걸어 갈 광대(廣大)의 길

[노컷 인터뷰] "연기는 '액션' 아닌 '리액션'…귀 열린 배우 되고파"

영화 '특별시민'에서 국회의원 심혁수 역을 맡은 배우 곽도원. (사진=쇼박스 제공)
"배우는 광대(廣大)죠. 한자로 쓰면 넓을 광에 큰 대자입니다. 아픈 서민들에게 해방감을 주니까요."

곽도원은 그야말로 뚝심 있는 배우다. 배우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활을 명확히 알고, 또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유쾌한 언변 뒤에는 그가 배우로서 가진 묵직한 사명감이 엿보였다.

'곡성'에서 처절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그가 이번에 영화 '특별시민'으로 능수능란한 정치인 심혁수가 되어 돌아왔다. 곽도원에게 배우와 정치인은 꽤나 닮은 지점이 많다.


"광대(廣大)라는 단어 자체에 사람이 없어요. 그들은 근심하는 사람이 아닌 거죠. 그러면 광대의 사명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들은 남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넓고 큰 사람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건 정치와도 맞죠. 남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가 배우로서 '꽃길'을 걸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1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출연해 인지도를 높인 후,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지난해에는 '곡성'에서 경찰이자 아버지 종구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범죄와의 전쟁' 이전, 그는 대개 단역이나 조연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고 생계가 힘들어 아동극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에게 대학로 배우들의 배고픈 현실은 남일이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었기 때문.

"지금도 대학로에서 연기하면 밥먹기 힘듭니다.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최저 생계비가 나오더라고요. 실제로 너무 생계가 힘들었던 영화 시나리오 작가 분이 돌아가시는 일도 있었죠. 국민이 죽어나가도 아무도 대책을 세우지 않고,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제대로 되어 있질 않아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될 사람들이 정책을 세우지 않는 거죠. 이런 영화에 참여하게 된 배우로서의 사명감입니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국회의원 심혁수 역을 맡은 배우 곽도원. (사진=쇼박스 제공)
대학로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곽도원이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건 학창 시절 우연히 극장에서 보게 된 연극 때문이었다.

"늦게 들어갔더니 자리가 없어서 판자를 댄 임시 좌석에 앉았어요. 거기가 되게 시야가 높으니까 배우들이 세트 뒤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게 보이거든요. 배우가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막 울고, 웃고 그래요. 나도 저거 하고 싶다 생각했죠."

극단 위주로 극장들만이 있을 뿐, 프로젝트 공연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극단에 들어가 단원으로 활동했다. 당시에는 대학교에 연극학과도 몇군데 없어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도 연극학과를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고.

"선생님들이 단원들을 모집하고, 창작극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극단 명맥을 유지해 나갔죠. 한 달에 5만원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니까 아동극도 했었어요. 영화는 확실히 연극과는 달라요. 많이 열려 있죠. 아니면 다시 찍고, 또 아니면 다시 찍으니까."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선 그가 배우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저를 선택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개그맨 분들을 존경합니다. 웃긴 사람이 될지언정 우스운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게 제 생각이고요. 배우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맞고, 저는 그걸 잘 유지해야 할 것 같아요."

'특별시민'의 아쉬운 점을 물어볼 때도 그는 선후배 배우들을 먼저 챙겼다. 3시간 50분 짜리 영화를 2시간 10분으로 줄이다보니 특별 출연 배우들이 다 편집됐단다. 그는 더 많은 좋은 연기들이 있었는데 아쉽다고 했다. 또 다시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점은 걸리지 않았냐고 물음을 던졌다.

"보통 선거대책본부장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브레인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직업을 쓴 겁니다. 사실 '아수라' 때가 가장 고민이었죠. 전 하고 싶은데 관객들은 재미 없어 할까봐요. 그게 제일 걸리는 지점이었어요. 검사를 또 똑같이 하라니까 권력이 빠지는 순간, 그 찌질한 모습을 집어 넣었고요."

영화 '특별시민'에서 국회의원 심혁수 역을 맡은 배우 곽도원. (사진=쇼박스 제공)
'범죄와의 전쟁'에서 만났던 최민식과의 호흡은 다시 없을 감사한 경험이다.

"이제 제가 40대잖아요. 이미 제 방식이 있으니 가다 쓰러지면 그냥 도태되는 건데 저 같은 후배들 붙잡고 좋은 말씀 해주시는 선배는 정말 손에 꼽습니다. 선배는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 중 하나고요. 제가 배우로서 현장에 해가야 하는 숙제는 제가 많이 노력해야 되는 것이고, 선배한테는 제가 더 다가가야 하는 거죠. 만약 불편하게 느끼셨다면 그건 후배 잘못이고요. 어떤 선배든지 일단 물어보는 후배를 더 아끼거든요."

본격적인 선거전을 다룬 영화이기에 '특별시민' 속에는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과 각종 물밑 경쟁들이 등장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의 요소들이 시국과 정치 현실에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많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진짜 있을 법한 일일까 생각했죠. 이래서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선거전의 내면을 현실적으로 그린 게 좋았고,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우리 영화에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런데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오히려 현실이 더할 것 같더라고요. 소재가 너무 약하지 않나 걱정했다니까요. 사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밝혀진 일들이 대부분 불법 아니에요. 대통령에게 대포폰이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곽도원은 스스로 정치·사회 분야에 대한 생각을 내놓길 두려워하지 않았다. '너무 정치적인 영화가 아닌가'라는 우려도 그에게는 그다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이제 세상이 좀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 영화하면서 제 정치적 감수성도 다시 깨어났고요. 영화에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있고, 그 뜻이 저와 맞다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곽도원은 스스로에게 뼈 있는 한 마디를 새겼다.

"연기를 하면서 연기는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임을 깨닫고 있어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연깁니다. 처음에는 극장에 나와서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죠. 생각을 할 것도 없었고, 그냥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만 생각했었고. 그런데 경력이 쌓이니까 귀가 닫히더라고요. 지적할 준비를 한 마음으로 듣고 반응하니까 눈이 멉니다. 그런 기간 동안에는 연기가 발전이 안돼요. 스스로 귀가 열린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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