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탄핵부터 조기대선까지…촛불로 밝힌 민주주의 기적

주최 측 "국민들의 광장 진출로 민주주의 새 역사 써…촛불민심 받들라는 과제도 남아"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린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박근혜 정권 퇴진부터 조기대선을 통한 대통령 선출까지, 총 23차례 광화문 광장을 밝힌 촛불집회는 전세계 유례없는 시민의식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까지 매 주말마다 20차례, 누적인원 1685만1160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밝혔다.

지난달 29일 대선 전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에도 총 3차례의 촛불집회가 더 열려 박 전 정권의 적폐 정책 해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탄핵 결정과 대선 이후에도 촛불의 여정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렇게나 많은 국민들이 끈질기게 광장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로 떨어질대로 떨어진 국격과 상처입은 자존감을 국민들은 촛불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 5월 9일 '장미대선'까지 이끌어 내며 정치권에 '숙제'를 남겼다.


◈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끌어 낸 1600만 촛불의 힘

최순실 씨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고쳐줬다는 증거가 담긴 '태블릿 PC'보도가 이어진 직후 박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최 씨의 국정 개입을 사실상 인정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마주한 국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의 불길이 박근혜 전 대통령 게이트로 번지면서 지난해 10월 29일 국민들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2만여명(주최측 추산)으로 시작한 첫 집회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다시 대국민 사과담화를 내놨다.

그러나 '사과'란 말이 무색하게 박 전 대통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기업모금은 선의에서 비롯됐고 위법행위는 최순실 특정 개인의 문제'란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는 들끓는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다.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국민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3차 촛불집회에 이미 106만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는데, 이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3차 촛불집회 직후 청와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려는 듯 "민심에 귀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성실히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약속하고도 이를 계속해서 어기자 국민들의 비판은 거욱 거세졌다.

영하의 추운 겨울 날씨에도 촛불은 더 거세게 타올랐다. 6차 집회 즈음 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이 허용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위기감을 느낀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도 거세졌다.

특별검사팀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등 수사가 이어지면서 촛불은 더욱 타올랐다. '퇴진'이라고 적힌 풍선이 날아올랐고 헌법재판소에 조속한 탄핵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을 메웠다.

외신들은 촛불 민주주의를 극찬하며 유례없는 뜨거운 취재열기를 보였다. 외신이 가장 주목한 것은 거대 인원이 모인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폭력 사태가 없는 평화집회를 이어갔다는 점이었다.

영국 BBC는 "한국 국민은 정직하지만 정치 경제 상층부의 부패 스캔들은 끊이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1차 촛불집회 직후 우리 경찰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주고 이성적으로 협조해 준 시민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 파면 후 지난 3월 4일 열린 20차 촛불집회는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이번 사건으로 민낯을 드러낸 적폐를 없애는데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13개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결국 구속됐다.

◈ 차기 대선 이슈에 목소리 내며 '장미대선' 마중물 된 촛불

'촛불 열차'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도 멈추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전 4월 29일 23차 마지막 집회까지 3차례의 집회가 더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고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자 촛불집회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박 전 정부의 적폐정책을 몰아내자는 쪽으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탄핵에서 멈추지 않고 탄핵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외침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 등 박 전 대통령의 정책과 국정운영 기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이어가며 '장미대선' 직전까지 사실상 국정을 주도했다.

지난 3월 25일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멈춘 촛불집회가 2주 만에 다시 열렸고,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 전 대통령 구속 등을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이 켜졌다. 그동안 주말 촛불집회를 주도해 온 '퇴진행동'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날'을 열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철저한 수습, 선체 조사 등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촛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차기 대선 국면에 이르러 각 대통령 후보들도 저마다 촛불정신 계승을 외치며 경쟁에 들어갔다.

정치평론가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선거 운동 기간 중 가장 큰 지지율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촛불정신 계승'을 적극적으로 내걸었던 것이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 '촛불 계승' 제대로 이뤄낼까…주최 측 "대선 기간 정치권 구태 만연"

현직 대통령 탄핵과 구속, 그리고 장미대선까지. 촛불은 촛불 이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많은 것을 이뤄냈지만 아직 '과제'는 여전히 남았다는 지적이다.

남정수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치권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국정농단을 국민들이 광장에 직접 진출해서 '직접정치'로 대통령을 파면한 역사적인 촛불혁명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촛불민심을 받드는 것이 이번 대선의 핵심이고 누가 더 이를 잘 받들 것인지에 대한 경쟁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소통과 통합, 개혁의 촛불정신을 어떻게 사회에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대선 이후 촛불정신인 '통합'을 기계적인 통합으로 일관하면 다시 촛불집회는 일어날 것"이라면서 "만연화된 기득권의 대립구도가 제도적으로 나아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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