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조기 대선을 치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죠"

신간 '최순실게이트-대통령을 끌어내리다'

- 우병우 전 수석 취재 도중 미르재단 의혹 포착
- 9/20 최순실 첫 보도 이후 36건 특종 보도
- 손 대기 시작하니 주요 제보 이어져
- 취재 도중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까 두려움 느껴
- 한꺼번에 달라지진 않아, 조금씩 변화하리란 희망 가져
- 우병우, 수사 초기에 증거 잡았어야 하는데 아쉬워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50~20:00)
■ 방송일 : 2017년 5월 8일 (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의겸 기자 (한겨레)

◇ 정관용> 내일이 바로 이제 대통령 선거입니다. 거슬러가 보면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게 2016년 12월 9일이었고요. 헌법재판소에서 파면한 게 2017년 3월 10일 그리고 내일 대선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기폭제가 된 게 바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죠. 바로 이 게이트 뒤에는 발로 뛰어서 취재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자들이 있었고요. 그 첫 최순실이라고 하는 세 글자가 주요 일간지 1면에 보도가 된 첫 보도가 바로 한겨레신문 작년 9월 20일 자였습니다. 그로부터 특별취재반을 꾸려서 여러 특종을 이루어낸 특별취재반 팀장, 한겨레 김의겸 기자가 이번에 책을 하나 냈네요.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는 제목이고요. 부제가 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 이런 제목입니다. 그래서 김의겸 기자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의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정관용> 몇 명이에요, 특별취재반이?

◆ 김의겸> 6명입니다. 처음부터 포함해서.

◇ 정관용> 처음부터 6명이었어요?

◆ 김의겸> 아니요, 처음에는 셋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 결과적으로 6명이 됐습니다.

◇ 정관용> 스스로 판단하실 때 그러니까 9월 20일 자가 그러니까 최초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보도잖아요. 그 후에 특종을 몇 건쯤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김의겸> 글쎄요. 그냥 1면 톱으로만 기준을 했을 때 누군가 세 봤는데 36건인가 그랬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세보지는 않았는데.

◇ 정관용> 3명으로 시작해서 6명 된 특별취재반이 그렇게 많은 특종을 했다. 전무후무한 거 아닙니까?

◆ 김의겸> 흔치는 않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이 책은 어떻게 내시게 됐습니까, 그래서?

◆ 김의겸> 취재를 할 때는 낼 생각을 안 했고요. 끝마칠 때 즈음 해서 대선배께서. 임재경 저희 부사장을 지내셨던 임재경 선배께서 책을 내라. 기록으로 남겨야 남는 거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고. 저희들도 저희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건데 그걸 좀 꼼꼼하게 기록해 놓음으로 인해서 기자들 기레기라고 욕 먹고 많은 비난을 듣기도 하는데. 그걸 좀 극복해 볼 수 있는 그런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그래서 쓰게 됐습니다.

◇ 정관용> 최순실 게이트라는 제목 속지를 딱 넘기니까 취재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다. 김의겸이 말했다. 어디까지 번져나갈지 겁이 난다. 이런 두 줄이 딱 한 페이지에 인쇄가 돼 있네요?

◆ 김의겸> 저도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 정관용> 겁났어요?

◆ 김의겸> 두 달쯤이면 11월 20일쯤 되는 건데…

◇ 정관용> 취재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니까 9월 20일보다 전에 취재를 시작했을 거 아니에요, 사실은.

◆ 김의겸> 그때쯤이 되나요. 그럼 여하튼… 그게 11월쯤 됐는데. 이제 그때가 촛불, 그 전에 JTBC 태블릿PC가 10월 24일 날 터져 나오고 그리고 촛불시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막 늘어날 때였습니다. 그래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이 사태가 어디로까지 갈지. 그때는 정말 겁이 났던 거죠.

◇ 정관용> 그때는, 겁이 나던 그때는 내일 대선을 치르리라고 생각도 못 했죠?

◆ 김의겸>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 때였습니다.

◇ 정관용> 부제가 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 이런 제목이 붙었는데.

◆ 김의겸> 조금 거창하죠.

◇ 정관용> 어떻게 끌어내게 됐는지 과거로 거슬러 가서 일전에도 지난 겨울에도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서 최초 최순실 보도가 나오게 된 과정을 잠깐 소개하신 바 있는데. 짧게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어떻게 이게 시작된 거죠?

◆ 김의겸> 시작은 우병우 때문이었죠. 지난 8월에 우병우 때문에 나라가 들썩였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와대가 우병우를 보호하기 위해서 조선일보와 전쟁을 벌이는 겁니다.

◇ 정관용> 그랬죠.

◆ 김의겸> 그런데 우병우는 일개 비서관인데 왜 조선일보와까지 전쟁을 벌일까. 그 궁금증 때문에 취재를 하게 됐고. 저희에게 결정적인 증언을 해 주신 분이 우병우가 본질이 아니다. 이건 미르재단을 덮기 위해서 우병우 건을 일부러 키우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이 계셨고.

◇ 정관용> 모 고위 사정당국 관계자라고 하셨는데.

◆ 김의겸> 책에 제가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 정관용> 지금도 현직에 있나요?

◆ 김의겸> 지금도 현직에 있습니다.

◇ 정관용> 그분이 미르재단 얘기할 때 처음 알았다면서요?

◆ 김의겸> 그때는 제가 처음 알았습니다. TV조선에서 이미 한 달 전에 보도를 했었는데 제가 그 보도 사실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요.

◇ 정관용> 그래서 미르가 뭐예요 그랬다면서요.

◆ 김의겸>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기자 맞아 이랬던 거죠.

◇ 정관용> 그래서 뒤져보니까 어땠습니까?

◆ 김의겸> 그래서 이제 여러 사람들 탐문을 하게 됐는데 그중의 한 분이 이제 최순실 씨를 잘 아는 어떤 분이 그 미르재단의 뒤에 최순실이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죠. 그래서 취재 의욕이 훨씬 더 솟았고. 그런데 있다라는 것만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죠. 증거를 입증을 해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저희 아까 얘기했던 특별취재반을 꾸리고 그 증거를 잡기 위해서 저희들이 20일 동안 뒤지다가 최순실의 꼬리를 밟게 된 거죠.

◇ 정관용> 꼬리를 밟은 게 바로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순실이 다니던 단골 마사지센터.

◆ 김의겸> 그곳의 센터장이었다. 그게 첫 보도였습니다. 9월 20일 자입니다.

◇ 정관용> 그걸 어떻게 알게 됐어요?

◆ 김의겸> 그건 처음에 추리죠. 한 300억 원 가까운 큰 돈을 만지는 재단의 이사장인데. 그 사람이 제법 체육계에서 명망이 있는 사람이어야 될 텐데. 이력을 뒤져보니까 스포츠마사지센터의 센터장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이상하다 하고 그 마사지센터 이름이 운동기능회복센터라고 하는 건데. 그 지도도 찾아보고 또 최순실의 살던 집을 찾아보니까 한 50m밖에 안 떨어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건 분명히 최순실이 단골로 다니던 마사지센터일 거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그렇게 낙하산식으로 꽂은 것일 거다라고 하는 추정에서 취재를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또 결정적으로 증언을 들려주신 분이 계셔서...

◇ 정관용> 그 마사지센터 내부에?

◆ 김의겸> 네, 마사지센터 내부에 정동춘 이사장과 같이 동업을 했던 분이에요. 동업을 했던 분이 최순실 씨 우리 센터의 단골이다. 나도 잘 안다. 나한테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제안을 했었다. 이런 식으로 저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렇게 말을 하실 때는 전혀 경계심 없이. 이게 이렇게까지 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해 주셨던 거죠.

◇ 정관용> 참 그때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후를 대비해서 옛날 일해재단 축소판같이 재단 한두 개 만드는가 보다. 거기에 최순실 오래된, 40여 년 된 그 인연이 뭔가 그런 제안도 하고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그 정도 수준이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다 그게 갑자기 최순실의 딸 정유라 이화여대 게이트로 번졌죠?



◆ 김의겸>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다가 그것이 국정농단으로 번졌죠?

◆ 김의겸> 네, 그렇죠.

◇ 정관용> 그 결정적 고비, 고비가 뭐예요, 그러면?

◆ 김의겸> 몇 가지 고비가 있는데 첫 번째 고비는 이화여대. 말씀하셨던 이화여대 문제죠. 처음에 저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안민석 의원입니다. 안민석 의원이 바로 그 해 여름에 9월 초로 알고 있는데 9월 초에 학부모들하고 같이 어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중 한 학부모가 그러더라는 거예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최순실이 이화여대 가서 난리를 쳤다는 거예요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안민석 의원이 귀가 번쩍 띄였죠.

◇ 정관용> 안민석 의원이 체육대학 교수 출신이에요.

◆ 김의겸> 그렇죠. 그래서 귀가 번쩍… 그리고 최순실을 계속 추적을 해 왔던 분이시라서. 귀가 번쩍 띄여서 그 학부모한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저희에게 전달을 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최순실이 난리를 친 함정해 교수님을 저희들이 찾아가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관련자 얘기를 들으면서 이화여대 첫 보도가 시작이 됐죠.

◇ 정관용>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최태민의 딸인데 자기 딸을 위해서 온갖 횡포를 하는구나. 참 전형적인 강남의 졸부, 이런 식의 이미지, 그런 정도였다가 갑자기 국정의 뭐 이렇게 된 것은 또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아무튼 태블릿PC 보도가 있은 후였겠죠?

◆ 김의겸> 결정적인 고비가 태블릿PC였죠. 그 전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JTBC가 태블릿PC를 보도함으로 인해서 이 정도로까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대통령의 각종 보고서를 받아보고 한다는 게 10월 24일에 JTBC가 보도를 하고 저희들이 바로 또 이어서 10월 25일에 저희들이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또 대대적으로 또 보도를 했죠. 그게 서로 맞물리면서.

◇ 정관용> 그렇죠. 이성한 사무총장한테 들은 얘기가 매일 저녁 몇 십 센티미터짜리 보고서들이…

◆ 김의겸> 청와대의 보고서를 받아서 그걸 최순실 씨가 들여다보고 그리고...

◇ 정관용> 무슨 회의를 했다 그런 거였죠.

◆ 김의겸> 회의를 하고.

◇ 정관용> 그런 거였죠.

◆ 김의겸> 그리고 이성한 씨가 하는 말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는 구조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런 이야기도 저희들에게 들려줬습니다.

◇ 정관용> 아니, 제가 그래서 궁금한 게 태블릿PC 보도가 10월 24일인데. 바로 다음 날 아침인 10월 25일 자 한겨레신문에 이게 실렸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한겨레신문은 태블릿PC 보도 이전에 이미 이성한 사무총장과 수차례 인터뷰해서 국정농단이 있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 김의겸> 네, 알고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왜 미리 보도하지 못했죠?

◆ 김의겸> 그건 이성한 씨와 저희와... 이성한 씨가 저희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철저하게 약속을 지켜달라. 오프더레코드를 해 달라,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했고 저희들이 그 전제에서 이성한 씨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랬다가 JTBC가 보도를 하니까 이제는 이걸 그냥 우리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다음 날 이어서 보도를 했던 거죠.

◇ 정관용> 이성한 사무총장도 태블릿PC까지 보도된 마당에 이제 오프더레코드 요구가 안 받아들여지겠구나라고 알고 있었겠네요.

◆ 김의겸> 승인한 건 아니었는데 또 그렇다고 크게 저희들에게 항의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 정관용> 그뿐 아니라 K스포츠재단의 정현식 전 사무총장 또 노승일 부장, 고영태 씨. 수없이 많은 증인들이 쭉 등장을 하는 거죠?

◆ 김의겸>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정현식 사무총장인데. 아까 이성한 사무총장이 미르재단의 사무총장이라면 정현식 사무총장은 K스포츠재단의 사무총장입니다.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그 조직의 인사, 돈 모든 것을 관장하는 그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정현식 씨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저희들의 취재를 피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도 안 받고 말씀도 안 해 주셨어요. 그런데 가족들이 점점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이게 문제가 커지고 이러다가 정현식 씨가 남편이, 아버지가 다치겠다. 왜냐하면 최순실이라는 존재는 아예 이름도 사진도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정현식 씨가 얼굴을 내밀고 돈을 받고 도장을 찍고 다 했기 때문에 당신이 다칠 수 있으니 조치를 취하자라고 하면서 저희들에게 접촉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설득을 하고 그래서 좀 이야기가 길어집니다만 10월 23일 밤, 비 오는 일요일 날 밤이었는데 저희들이 연락을 받고 남양주의 마석으로 찾아갑니다. 찾아갈 때 제가 한겨레 20년 사사를 가지고 가는데 그 사사를 보여주면서, 한 권 드리면서 한겨레신문 작고 가난한 신문이지만 정직한 신문이다. 그러니 저희들에게 모든 것을 말씀해 달라라고 간청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적극 협조로 돌아섰고.

◆ 김의겸> 네, 그다음에는 적극 협조를 해 주셨죠.

◇ 정관용> 청문회에 나와서도 적극적으로 증언을 했죠.

한겨레 김의겸기자(사진=시사자키제작팀)


◆ 김의겸> 그렇죠, 가장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신 분 중 한 분인데 그렇게 큰 주목은 받지 못했습니다.

◇ 정관용> 어쨌든 이런저런 취재후기를 쭉 짚어봤는데. 이제 좀 간략히 정리해 봅시다. 김의겸 기자께서도 사실 맨 처음 이거 한 두 달 됐을 때 어디까지 번져갈지 겁이 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몰랐죠? 사태가 이 지경인지 몰랐죠?

◆ 김의겸> 네, 이 지경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조금만 뒤지니까 막 나오죠?

◆ 김의겸> 네, 그랬던 거죠. 그건 그만큼 박근혜 정부가 어떤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동안 적폐가 쌓여 있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으나 취재에 들어가면 누군가 건드려주면…

◇ 정관용> 나오죠.

◆ 김의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정관용> 제가 특검이 수사를 마무리하고 이럴 때 이제 평가하는 방송을 하면서 특검 너무 잘했다, 사람들이 막 칭찬들을 하길래. 워낙 박근혜와 그 일당이 잘못한 게 많기 때문에 특검이 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비슷한 거.

◆ 김의겸> 정확하게 보신 겁니다.

◇ 정관용> 비슷한 거 아닙니까?

◆ 김의겸> 그렇습니다.

◇ 정관용> 기자분들 입장에서도 조금만 뒤지면 사람들이 막 나와서 얘기해 주고 증거가 나오고 그런 거 아닙니까?

◆ 김의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이 하나하나 찾아간 것도 있었지만 취재가 시작되고 취재에 탄력이 붙고 눈덩이 굴러가듯이 굴러가니까 먼저 연락을 해 오신 분들이, 결정적인 분들이 많이 있었던 거죠.

◇ 정관용> 또 거슬러 가면 최초에 우병우에 주목하고 계실 때 고위 사정당국 당국자가 이건 미르재단 덮으려고 우병우 키우는 거 야라는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사정기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 김의겸>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않았지만 극소수겠지만 알 만한 분은 알고 있었던 거죠.

◇ 정관용> 그 얘기는 우리 정부조직 시스템이 제대로만 굴러갔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안 가게 사실 다 차단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 김의겸> 그렇죠. 유진룡 장관 같은 경우에도 그런 경우죠.

◇ 정관용> 그렇죠.

◆ 김의겸> 중간중간에 공무원들이 자신의 어떤 최소한의 영혼을 지니고 자기 역할을 했으면 블랙리스트가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겠죠. 하지만 문제가 터지지까 블랙리스트의 실체와 그 전모가 드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 정관용> 그리고 TV조선도 사실 최순실 존재까지 알고도.

◆ 김의겸> 알고 있었습니다.

◇ 정관용> 처음에 보도를 안 했잖아요.

◆ 김의겸> 알고 있었지만 청와대의 반격이 들어오니까 보도를 멈추고 최순실의 최 자도 못 꺼냈던 상황입니다, 그 당시에.

◇ 정관용> 정부기구, 언론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있지 않아도 될 일이 벌어진 거죠?

◆ 김의겸> 그렇습니다.

◇ 정관용>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 김의겸> 이런 큰 일을 겪었으니 진전이 있겠죠. 발전이 있겠죠. 그렇다고 한꺼번에 모든 게 다 변화되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공직자 또는 일반 시민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조금씩 희망적인 방향으로 진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를 해 봅니다.

◇ 정관용> 다시는 이런 일 없겠죠, 이제?

◆ 김의겸> 그것까지 장담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희대의 사건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특별취재반은 지금은 해체됐습니까?

◆ 김의겸> 네, 해체됐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김의겸 기자는 뭘 취재하고 계십니까?

◆ 김의겸> 저는 원래 있던 여의도 정치부 소속으로 돌아가서 지금 대선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처음 시작했던 우병우로부터 출발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 우병우만 지금 구속이 안 돼 있네요?

◆ 김의겸> 그만큼 이제 검찰조직이 강고하고 어떤 조직의 자기 보호본능 이게 강하다고 봐야겠죠. 특히 우병우가 심어놓은 그 라인, 이른바 우병우 라인이 있기 때문에. 수사는 초기에 해야 되는 건데, 증거를 잡아야 되는데 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 정관용> 다음에 또 큰 특종을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만. 이런 일이 또 안 벌어져야 되기 때문에 특종 못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김의겸> 네, 고맙습니다.

◇ 정관용> 한겨레신문의 김의겸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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