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은 지난해 말 발표한 앨범 '빅토리즈(Victories)'. 현재는 후배 래퍼 저스디스와의 콜라보 앨범을 준비 중이다. "돈 보다 좋은 음악이 우선"이라는 신념으로, 여전히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 그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하이라이트레코즈 사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운영과 개인 활동을 겸하고 있다. 최근에는 레이블 아티스트인 지투, 레디, 윤비, 스웨이디 앨범 준비를 돕느라 정신없었고, 개인적으로 저스디스와 콜라보 앨범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진전이 많이 되지는 않았다. 저스디스는 작업 속도가 빠른 편인데, 난 요즘 가사 쓸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만들고 갈아엎고의 반복이다."
-마이크로닷(관련 기사 : [힙합릴레이] 마이크로닷 "최자·도끼 형 조언, 가슴에 새겼다")이 당신을 지목했다.
"'마닷'은 굉장히 긍정적인 친구라 함께 있으면 에너지를 얻게 된다.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이다. 다이나믹듀오 2집에 참여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마닷은 올블랙으로 활동할 때이고, 변성기도 오지 않은 꼬마였다. 그 이후 다시 본 건 '쇼미더머니4(이하 쇼미)' 때다. 난 프로듀서로, 마닷은 참가자로 출연했다. 작년에는 '힙합의 민족2(이하 힙민)'에 함께 출연하며 가깝게 지냈다. 얼마 전 DJ쥬스 앨범의 '위 온' 트랙을 함께하기도 했고."
-"팔로알토는 훅 기술자"라는 그의 평가에 대해선.
"고마운 말이다. (웃음). 활동 초창기인 2005, 2006년에 나온 개화산 크루 앨범이나 더콰이엇과의 P&Q 앨범도 그렇고, 항상 훅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특히 '쇼미'를 통해 발표한 '거북선'이 큰 인기를 끌면서 '팔로알토는 훅을 잘 만든다'는 인식이 많은 이들에게 박힌 것 같다."
-팔로알토 랩의 특징,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랩은 그루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트를 얼마나 음악적으로 잘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활동 초창기 때는 주어진 비트에 어떤 메시지, 감정을 녹일지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몇 년간은 랩은 하나의 악기라는 생각으로 비트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를 고민한다. 물론, 그 안에 메시지도 음악적으로 잘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트 위에서 빠르게 랩을 할 때도 느슨하게 랩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조화로움인 것 같다. 묘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랩을 만든 적은 없다."
-비와이를 예로 들며 '묘기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적도 있지.
"비와이는 재능 있는 래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랩을 즐겨 듣지 않는다. '힙민' 출연 당시 이미쉘 씨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며 비와이를 언급했는데, 기사 헤드라인이 '비와이 별로'라고 나와서 욕을 많이 먹었다. (웃음). (비와이의 랩을) 폄하할 마음도, 악감정도 없다. 그저 나한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거다. 오해 없으셨으면 한다. 감히 평가하려는 게 아니고 취향이 아니라는 거니까."
-지난해 발표한 앨범 '빅토리즈'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앨범 단위 결과물은 2년 만이다.
"10년 넘게 활동했다. 점점 새로운 느낌의 가사를 쓰고 싶고, 책임질 수 있는 말을 내뱉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잘 대변하면서 마음에 드는 가사가 아니면 공개하기 꺼려 지더라. 그래서 작업 시간이 길어진 것 같다. 방송 출연 이후 나를 향한 비난의 시선이 늘어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이전까지 하이라이트레코즈(이하 하이라이트) 아티스트들이 방송을 타지 않았다. 주로 홍대를 기반으로 클럽에서 공연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쇼미'에 나가니 기존 팬들의 실망감이 컸던 것 같다. 이전에 허클베리피와 레디가 '쇼미'에 대한 부정적 가사를 썼고, 저 역시 시즌1 시작 전 SNS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으니까. 당시엔 프로그램 제목 자체가 힙합 하는 사람들이 돈만 밝히는 것처럼 표현된 것 같아서 싫었다. 특히 동료 래퍼들에게 오디션 보라고 제안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런 모습이 당시 팬들, 관계자들에게 각인이 되었나 보다. 그랬던 하이라이트의 수장과 소속 래퍼들이 출연한다고 하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결심했던 이유는.
"저는 사실 시즌1 때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고, 그 이후에도 100% 긍정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게 됐다. 시즌이 거듭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긴 하더라. 그렇게 래퍼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출연할 수 있겠구나 하고 점점 생각이 열린 거지. 프로듀서 출연 제안을 받은 뒤 걱정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경험이라는 생각을 했고, 내 존재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웃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쇼미'에 아직 불만인 부분도 많다. 현상에 대한 얘기다. 물론, '쇼미'가 래퍼들을 더 유명하게 만들어줬고, 힙합 시장에 돈이 돌게 해준 측면이 있다. 나도 그렇고 하이라이트도 수혜를 받은 입장이다. 하지만, '쇼미'는 기본적 틀이 경쟁을 하면서 거기서 살아남아야 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서 인정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지 않나. 그 방송을 통해 힙합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한국 힙합의 긴 역사라던지, 말로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정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란 말이다. '쇼미'에서 보이는 모습만로 판단해 버리게 되는 측면이 아쉽다. 또, 대다수의 래퍼들이 성공을 위해 '쇼미'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로 줄어든 느낌도 든다."
-'쇼미', '힙민' 등 방송에 출연해본 소감은.
"난 '쇼미'를 하면서 즐겁게 방송하진 못 했다. '힙민'은 '쇼미' 보단 편하게 임하긴 했지만, 방송이라는 게 참 쉽지 않더라. 나란 사람 자체가 자극적인 캐릭터가 아닌데, 억지로 리액션을 크게 해야하고 그런게 어렵더라. 난 그냥 스튜디오나 무대가 더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맞는 방송을 아직 못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진지충' 스타일이라 예능이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웃음)"
-하이라이트가 CJ E&M 음악사업부문과 손을 잡은 이후 비난 여론이 더 커지기도 했는데.
"타이밍이 다 그랬다. CJ와 인수 합병한 뒤 얼마 안 있고나서 비프리와 오케이션이 하이라이트를 떠났다. 그런 이슈들이 겹치다 보니, 마치 하나의 이유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진 것처럼 비쳐지더라.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겉만 보지 않나. 그들이 음악적 성향이 맞지 않아 떠났다는 둥, 하이라이트 아티스트들이 디스랩을 한 래퍼를 찾아가 괴롭혔다는 둥 사실이 아닌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그게 재작년쯤이다. 인터넷에서 그런 얘기가 계속 나오니 지치더라."
-CJ E&M 음악사업부문과 함께하고 난 뒤 장단점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우리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정말 좋은데, 왜 더 알려지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 사실 CJ와 계약하기 전부터, 프로모션 부분을 강화해 줄 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이 잘 맞아서 CJ와 손잡게 된 거다. 현재 하이라이트를 담당해주시는 분이 로컬 문화를 즐기시는 분이라 소통이 잘 된다. 단점은 없는 거 같다. 굳이 따지자면 회계적인 부분인데, 돈 부분에서 투명해야 하니까 직원 분들이 야근을 자주해야한다는 게 단점이다. (웃음). 음악적 방향성이 바뀐 건 전혀 없다. 똑같이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음악 하는 거고, 내가 대표라고 해서 지시하는 것도 없다."
-하이라이트가 어느덧 설립 7주년을 맞았다.
"회사를 처음 만들 때 5년 해보고 우리가 원하는 결실이 보이지 않으면, 관두자는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7년이 됐다는 것 자체로 일단 성공적이라고 본다. 되돌아보니 정신없이 달렸고, 폭풍같은 시간이었다. 하이라이트를 거쳐 간 모든 직원 및 아티스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회사 설립 후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초창기에는 돈이 없어서 제약이 많았고, 자체 스튜디오를 만들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땐 사무실이 지하에 있었는데,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의 3층짜리 사옥으로 이사할 때 너무 기뻤다. 공사가 작년에 끝났는데, 너무 기뻐서 한창 공사 중일 때도 매일 같이 출근해 앉아있곤 했다."
-레이블을 이끌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없나.
"앞서 언급한 대로 재작년이 진짜 힘들었다. '거북선' 리믹스 버전 가사를 보면 그 당시의 화를 느낄 수 있다. 여러 가지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떠도는 상황이 견딜 수 없이 억울했고, 온라인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이라이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게 정말 싫었다."
"힙합 커뮤니티 같은 곳에 안 들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공간에 너무 신경쓰다보면, 여러 얘기에 얽매일 수 있고, 음악 하는 데 있어 한계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창 슬럼프를 겪던 시기에 위로를 준 곡이 있나.
"너무 많은 곡이 있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건 크러쉬의 '아빠처럼'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가 '빅토리즈'라는 앨범이 완성 단계일 때쯤 나왔다.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위로가 됐다.
또 하나는 스텔라장의 '그대는 그대로'인데, 아직 정식 공개가 안 된 곡이다. 자메즈 앨범 관련 영상에 삽입된 곡인데, 가사와 멜로디가 심금을 울리더라. 자메즈가 음원 파일을 따로 보내줘서 혼자 듣고 있다."
-래퍼로 활동한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뿌듯함을 느낀 순간은.
"너무 많다. 최근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 2017'에서 공연할 때다. '거북선' 리믹스를 따라 부르는 어린 친구가 인상 깊었는데, 알고 보니 중학생이더라. 내가 30대 중반이니, 나이차가 스무살 정도 날 거다. 그런 어린 친구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고 뿌듯했다.
그런 순간들이 항상 날 기분 좋게 한다. 재작년 정신적으로 지쳐있을 때는 진심이 담기 손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어릴 때 난 공부도 못했고,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활달한 성격도 아니었고,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내가 한국 힙합에 관한 인터뷰나 글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도 감사하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서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힙합씬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며 느낀 점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힙합은 비주류였다. 지금은 힙합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정말 좋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인기가 거품이 아니었으면 한다. 분명 언젠가 다시 비주류가 되는 날이 올 거다. 한창 무브먼트 크루를 중심으로 힙합이 부흥하다가 2010년쯤 홍대 힙합 클럽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시기도 있었고.
이럴 때일수록 좋은 음악,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국내에 힙합 문화가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정말 중요한 건 돈 많이 벌고 여자에게 인기를 얻는 게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음악하는 것 걸 많은 뮤지션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잘한 래퍼가 있으면 그 사람이 잘한 거고,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행동을 한 래퍼가 있으면 그 사람이 잘 못한 거다. 일부의 잘못된 행동으로 힙합씬 전체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재작년에 유부남이 됐다. 결혼 전과 후 달라진 게 있다면.
"결혼 전에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음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또, 와이프와 결혼하면서 반려견이 처음 생겼는데, 강아지와의 유대감이 너무 끈끈해지는 거다. 거기서 느끼는 감동을 이번 앨범 수록곡에 담기도 했다. 앨범 재킷에 강아지 아트웍을 넣기도 했고. 예전에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순간들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지금은 와이프, 그리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들에서 영감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저스디스와의 앨범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앨범 콘셉트를 명확하게 잡지는 않았다. 콜라보 앨범이니 재미있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저스디스와는 은근히 잘 맞는 부분이 있다. 길게 통화하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한 번은 5시간 넘게 통화한 적도 있다. 그 친구의 음악에서 가장 높게 사는 건, 미묘한 감정을 가사로 잘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다는 점은 나와 비슷하고,"
-콜라보 앨범은 언제쯤 들을 수 있나.
"원래 이 질문을 받으면 8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언급했었는데, 지금 속도로 보면 8월은 힘들 것 같다. (웃음). 랩이 완성되어도, 사운드 적으로 디테일하게 손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해 안에는 무조건 낼 생각이다. 올해 그 앨범 외 다른 작업은 생각하고 있는 게 없어서 집중해서 작업하려 한다."
-래퍼로서, 레이블 수장으로서 현재 가지고 있는 소신은.
"음악이 항상 첫 번째였으면 좋겠다. 물론, 밸런스를 맞추기가 쉽지 만은 않다. 음악적 소신을 지켜야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선 금전적인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처음 회사를 만들 때 가진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 한다."
-팔로알토에게 힙합이란.
"그냥 삶인 것 같다. 삶의 방식,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힙합이다."
-팬들에게 한마디.
"늘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제 음악에 관심가져 주셨으면 하고 공감해주셨으면 한다. 인터뷰 읽고 공연도 많이 보러와 달라. 사람 대 사람으로써 마주할 때의 느낌이 또 다르니까.“
-팔로알토가 지목할 대음 래퍼는.
"주노플로를 지목하겠다. 필굿뮤직 소속 아티스들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A Tribe Called Quest)' 헌정곡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곡에서 주노플로의 랩을 인상 깊게 들었고, 어떤 아티스트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