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몸의 인문학

'무예 인문학 - 전통 무예에 담긴 역사·문화· 철학'

'무예 인문학'은 무예에 담긴 역사, 문화, 철학 등 인문학을 소개한 책이다.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검술을 수련해온 전통 무예 전문가이자 무예사(武藝史) 전문가가 이 책을 썼다. 그동안 천시되어온 '몸의 인문학'을 무예 수련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예의 예술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검무(劍舞)다. 검무는 축제나 연회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무기를 들고 춤을 추면서 하늘과 소통을 시도하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아군의 승리를 북돋웠다. 검무는 날로 화려해졌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기방의 기녀도 검무를 출 수 있어야 제대로 대접받았다.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쌍검대무(雙劍對舞)>에는 검무를 추는 무녀가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무관을 배출해냈다. 무과 시험을 보면 조선이 요구한 무인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은 활쏘기와 마상무예 중심으로 이루어진 6가지 무예 시험과 이론 시험인 강서(講書)를 보았다. 강서에서는 전술 지식도 요구했지만, 그보다 유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았다. 무관을 유학 지식을 겸비한 관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병서도 전투에서 싸우는 방법보다 '장수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장수의 마음가짐과 인문적 소양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고 군사들의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병서인 『병장설』은 장수를 상중하로 구분하는데, 상(上)에 해당하는 장수는 군사들의 움직임과 고통을 이해하는, 유교적 학업을 닦은 사람이다. 중(中)으로 여기는 장수는 무용(武勇)을 숭상하지만 경거망동을 삼가고 관료로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고, 하(下)로 분류되는 장수는 힘을 믿고 세력에 의지하며 사람을 거만하게 대하는 자라고 했다.

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무예다. 무예는 정신에 밀려 무시당했던 몸을 복권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오늘날에는 무예 수련으로 얻어진 승부욕과 야생적인 전투 본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무예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것이다.


과거에도 '문(文)' 대신 '무(武)'로 나라를 개혁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문무겸전론이다. 정조는 무 중심의 문무겸전론으로 기득권층인 노론을 압박하고, 장용영으로 군권을 장악하는 한편 새로운 인재 양성을 추진했다. 정조 이전의 문무겸전론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유학적 교양을 요구하는 논리였으나, 정조 대의 문무겸전론은 그동안 천시되었던 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 국정 운영의 철학으로 발전시킨 것이라 보아야 한다. 정조의 문무겸전론의 핵심은 '무적(武的) 기풍 확산을 통한 국정 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병전(兵典)을 중심으로 법전을 변화시키고, 『병학통兵學通』과 『무예도보통지』 등 병서를 간행했다.

책 속으로

무예는 자기 몸과의 ‘전투적 소통’이다. 적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극한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와 몸의 흐름이 일치될 때 비로소 본질적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
-본문 165쪽

무예에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그 움직임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몸짓이 가능하다. 상대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혼자 움직이는 것,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세상살이 또한 마찬가지다. 부든 권력이든 제아무리 가득 채우고자 해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채울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인정하고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모습이다.
-본문 252쪽

무예 수련은 자신의 몸과 끊임없는 투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자세라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수천 번, 수만 번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몸에 새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예가 조금씩 몸과 일체화되면서 자신만의 몸짓이 나오게 된다. 같은 자세를 배운다 해도 사람의 몸은 서로 다르기에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본문 280쪽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312쪽 | 15,000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