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이번 19대 대선에서 문화 정책은 역대 대선에 비해 주목을 받는 편이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라는 굵직한 사건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은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제21조)와 ‘예술의 자유’(제22조)를 침해한 반헌법적 범죄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 유신 검열의 근간을 이룬 ‘국가주의’의 부활이기도 하다.
굳이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블랙리스트를 악질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문화예술인의 생존과도 긴밀히 연결된 지원제도를 통제함으로써, 예술인을 길들이려 한 수준 낮은 행태이기도 해서다. 치졸함의 끝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번 대선 후보들의 문화공약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특히 3개 정당은 4일 문화예술단체와 정책 협약식을 각각 맺고,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상 규명 등을 거듭 약속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정책을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두 당은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각각 '문화재정 2% 달성'과 '문화민주주의 및 한류산업육성'을 주요 정책으로 꼽았다. 문화를 산업차원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박근혜 정권과 많이 닮았다.
블랙리스트라는 큰 정책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5개 정당의 문화 정책 공약이 대동소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전반적으로 공통적인 정책은 ▲생활문화 확대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 ▲청년 문화일자리 창출 ▲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 문화복지 확대 ▲지역단위 공공 스포츠클럽 확산 등이다.
공통적인 정책이 나오는 이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요구가 이뤄져서이고,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선언적 공약의 느낌이 강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쉽게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5일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문화경제학회가 공동 개최한 '다시 문화다-차기정부의 문화정책' 세미나에서 윤정국 한국문화경제학회 부회장은 “정책은 결국 재원과 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고 평했다.
또한 내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대해서도 국고지원 확충 등을 통해 해소할 계획이라는 공약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이 빠져 허울뿐인 구호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각 정당 문화 정책 공약에서 장기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휘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문화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장기 비전이 보이지 않고,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단·중기 과제 등으로 공약이 구성된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후보별 주요 문화 공약이다.
◇문재인
-. 문화계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
-. 예술인 창작권 보장과 예술인복지 사각지대 해소
-. 창작·유통이 상생하는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 일상에서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
-. 문화유산 가치 제고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로 문화균형 발전
◇홍준표
-. 문화재정 2% 달성
-. 문화예술인을 위한 맞춤형 창작 공간 확충
-. 청년 문화인 콘텐츠인 육성 및 일자리 창출 지원
-. 스마트 문화재 관리 제도 도입 및 법제도 정비를 통해 문화재 관리 강화
-. 생활문화시설·프로그램 확충을 통한 문화격차 해소
-. 우수한 전통문화 원형 복원 사업
◇안철수
-. 표현의 자유와 창의적인 문화예술 환경 구축
-. 가칭 문화사회위원회 발족 및 대통령 직접 참여
-. 국고 지원 등 문화예술진흥기금 확충
-. 예술노동지원센터 설립해 문화예술인 근로조건 개선
-. 문화재 관련 법률 정비와 문화 콘텐츠 저작권 강화
-. 정보통신 융·복합 콘텐츠를 문화예술로 아우르는 대중문화산업 육성
◇유승민
-. 문화예술인보호법 강화
-. 문화 민주주의(국민 1인 1여가, 문화서비스 확대)
-. 경제공유지로서의 한류산업 육성
-. 장애인 등 소외계층 문화예술 활동 확대
◇ 심상정
-. 블랙리스트방지법 입법과 문화예술가치 확립
-.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과 복지 확대
-. 문화예술정책·재정의 정의로운 전환
-. 학교와 지역에서 누리는 문화예술 교육
-. 문화격차 해소 및 지역 문화 활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