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계의 좌장격 핵심인사인 김덕룡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이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중도·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해 김 이사장을 영입하려던 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물밑 전쟁에서 문 후보가 승리한 셈이다. 이후 김 이사장은 문 후보 선대위에서 '하나되는 대한민국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국민통합의 길'에 대해 들어보고자 3일 그의 방배동 개인사무실 '덕린재'를 찾았다.
▶ 18대 대선에 이어 또다시 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
난 젊음을 민주화 투쟁에 바쳤다. 일생 민주화 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 분명하고 국정운영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문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엔 외교·안보·경제 다중 위기 상황 속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했다. 국정 경험과 능력이 있고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문 후보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또 MB·박근혜 정권 모두 개헌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집권한 후 달라졌다. 문 후보를 선택한 이유 중 또 하나는 개헌할 후보를 밀어주자는 결심에서다.
판세란 큰 흐름이 축적돼 나타난다. 결정적 사태가 아니고선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간 보수세력의 네거티브로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나 의구심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양심적·합리적 중도, 보수 세력이 문 후보를 지지하니 거부감이 줄고 있는 모양새다. 문 후보가 안정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수구보수, 강경보수들이 방향을 잃고 혼돈에 빠져 있었는데 전혀 희망이 없던 홍 후보가 조금 뜨는 것 같으니 결집하는 상황이라 본다. 그건 한계가 있다. 2일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언행을 잘하더라. 그러나 그 뿐이다. 판세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 중도·보수층에서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준다는 걸 체감하는가.
김영삼 정권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많이 내비친다. 민주당 선대위에 참가하긴 어색하니까 내가 만든 ‘하나되는대한민국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온다. 중도·보수 성향 운동을 하던 심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나,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도 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중도·보수층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실감했다.
▶ '하나되는대한민국위원회'의 취지는 뭔가
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선거를 치르다 보니 정책 비교보다 네거티브가 성행한다. 후보들끼리만이 아니라 진영, 지지자 간에도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선거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선거가 끝나면 갈등, 분열을 통합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일이 중요하다. 문 후보에게 ‘하나되는대한민국위원회’를 제안했더니 문 후보도 승낙해 만들게 됐다.
▶ '국민통합'이 위원회의 키워드인가.
그렇다. 문 후보는 당선되면 먼저 통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 정국을 피할 수 없다. 연합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물론 마땅히 제외해야 할 사람들은 있다. 박근혜 정권을 유지하고 핵심이 됐던 국정농단 세력은 제외하더라도 정치색을 너무 고려하지 말고 많은 정치 세력을 참여시켜야 한다. 여러 전문가를 모아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내각 구성부터 통합내각을 꾸려야 한다. 불교에 ‘강을 건너 피안에 도착하면 타고 온 배를 버려라’는 말이 있다. 당선되면 그때부터 ‘내 편’이란 것은 버려야 한다. 스스로 몸을 낮춰 국민과 소통하고 본인을 통합의 도구로 이용해달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첫 내각부터 실천해야 한다.
▶ 확고한 개헌파 중 하나다. 어떤 개헌 방향을 원하는가.
큰 방향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 헌법 체제는 승자독식체제다. 대통령은 제왕으로 출발해 식물 대통령으로 끝난다. 정치의 본령이 대화와 협상인데, 현 체제에선 그럴 여지가 없다.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제도가 중요하냐, 운영이 중요하지” 하는데 그건 잘못됐다. 정치의 기본 인프라인 헌법을 바꿔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나누고, 대통령도 권한을 나눠야 한다. 분권형 체제를 만들어야 연정도 가능하다.
▶ 대선 이후 활동 계획은.
난 정치를 은퇴한 사람이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국민통합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돕겠다. 그저 정치를 오래하며 대한민국의 변화는 지금 같은 정치론 안 된다 생각했다.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헌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 탓만 하지 말고 정치를 바꾸기 위해 직접 참여해야 한다.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먼저 정치에 참여하는 게 투표 아닌가. 대통령이 힘을 갖고 협치하기 위해 50% 이상 지지를 얻는 대통령 만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