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면죄부' 주는 굴욕합의…반성 필요한 '위안부' 보고서

"다음 정부에서 정부 차원 백서 내야"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일간 '12.28 합의' 이후 정부백서가 아닌 민간보고서 형태로 나와 한차례 논란을 빚은바 있는 '위안부 피해자 백서'가 내용 면에서도 상당 부분을 12.28합의 합리화에 쏟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다가도 한일 합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등 한 권의 보고서인지 헷갈릴 정도다.

여성가족부가 4일 발간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보고서'는 군 등 국가권력이 일본군 '위안부'에 관여한 만큼,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제법과 국내법에 근거한 설명 뿐 아니라 관련 문제를 다룬 국제기구나 국제단체의 입장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일본의 법적 책임 상세히…피해 상황 서술에도 할애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또한 일본정부가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원상회복'과 '금전배상', 국제법 위반 사실의 인정과 유감표명 등 '만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어 보고서는 2006년 1차 아베내각의 역사수정주의 움직임과 이에 대응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채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서술했다.


◇ 박근혜 정부 한일합의에는 태도 바꿔 "정치적 해결"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사진=송호재 기자)
보고서는 그러나 2015년 12월 28일 있었던 박근혜 정부의 한일합의와 관련해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내내 법적 책임을 강조하던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군의 관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총리명의로 피해자들에게 사죄반성을 표명하였으며 '사실상' 배상조치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들어, 이 '핵심 사항'에 대해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쓰고 있다. 최우선 원칙이 바뀐 것이다.

앞서 12.28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앞선 정부와 시민사회의 주요 입장이었던 일본의 법적 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는 점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았다.

또한 고노담화 등 그간 일본의 전향적 입장 발표에서 진전된 것이 없다는 것도 지적받아왔다. 1993년 고노담화는 '위안부' 설치와 관리 등에 일본군이 관여한 것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밝힌 바 있는데, 12.28 합의는 아베 총리 명의로 사과가 나갔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

심지어 보고서는 "낙제점 수준의 '위안부'인식을 가진 아베 총리로부터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반성 표명을 문서의 형태로 끌어낸 것은 나름의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민망한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법적 해결' 대신 '정치적 해결'을 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생존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며 한국정부가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 일본은 10억 엔 배상금 아니라는데 우리만 '사실상' 배상금 주장

주먹을 꽉 쥔 소녀상. (사진=박종민 기자)
보고서는 특히 12.28 합의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대해 줄줄이 변명을 적고 있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뺀 채 합의의 '최종성과 불가역성'을 확인했지만, "피해자의 소송이나 진상규명 활동은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혀있듯 "한일 양 정부가 외교교섭 의제나 쟁점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것은 피해자와 관련 시민단체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일이다. 무엇보다 일본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을 묻는 작업에서 정부가 빠진다는 말이다.

일본 측에 인심을 쓰다 못해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정부 실책을 위로하는 듯 한 부분도 있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를 위해 출연한 10억 엔에 대해 "법적 배상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이 돈이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반성하는 의미에서 정부 예산 조치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됐던 소녀상 처리 문제에 대해 보고서는 12.28 합의내용에 포함됐었다는 것을 재차 인정했다. 다만 '본질 합의'가 성실하게 이행될 때 비로소 검토되는 '부수합의'라며 의미를 축소하면서 정부 편을 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집필진은 12.28 합의 부분에 대한 보고서 내용에 대해 "연구진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보고서는 한일 정부 간의 갈등과 관계,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의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가 이끌어낸 2015한일합의는 이 문제들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이끌어낸 최선의 합의'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 "여가부는 박근혜 정부 잔존세력, 자격 없다"

정대협은 또한 보고서 발간기관인 여가부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잔존세력이며 합의를 홍보하고 화해치유재단을 주도한 정부기관"이라며 "더 이상 미래가 없으며 국정운영에 참여할 자격을 잃었다.

한일합의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손을 떼고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피해자 목소리 없고 정부 대변만…폐기해야"

지난 2016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6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당시 모습. (사진=박종민 기자)
나눔의집 역시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정부차원의 백서가 아닌 민간 용역 보고서로 둔갑하였다는 것은 지금도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눈치를 보는, 주권을 포기한 행동"이라면서 "올바른 백서 발간은 다음 정부에서 철저하게 검증을 받고, 피해자들의 의견이 충분하게 반영된 백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고서 내용에는 불법적인 합의안에 대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있지 않고, 탄핵 당한 정부의 목소리만 있다"며 피해 할머니들이 "합의안 폐기, 화해 치유재단 해체를 요구하면서, 보고서를 발간한 연구자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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