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레이터 플레이’…이렇게 웃기다니

[노컷 리뷰] 연극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

연극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 (제공 사진)
연극 ‘옆방에서 혹은 바이브레이터 플레이’(극단 행길)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내 안의 음란마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저리 발칙한 제목이 붙었을까. 게다가 18세 이상만 볼 수 있다니. 남 모르게 기대감을 품은 채 객석에 앉았다.

2시간이 넘는 공연은 지루한 줄 몰랐다. 배우들의 진지한 대사와 연기는 역설적이게도 관객의 웃음보를 ‘빵빵’ 터트렸다. 관객이 하도 웃어대서 배우들의 대사가 안 들릴 정도였다.

극은 1880년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다. 기빙스 박사는 집에서 전기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 자궁과 항문 마사지를 함으로써 남녀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기빙스 부인은 옆방인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치료 도중에 들리는 묘한 신음 소리와 진료 후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만족해하는 환자를 보면서 호기심을 느낀다.

이후 남편의 환자인 덜드리 부인과 교감하며 바이브레이터 치료 효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바이브레이터가 지금은 섹스 토이로 자리 잡았지만, 원래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극은 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았다.

실제로 ‘히스테리’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자궁의 병’을 뜻한다. 여성의 ‘히스테리’가 자궁에서 비롯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해 여성의 외음부를 마사지하면서, 패록시즘(오르가즘을 뜻하는 당시 의학용어)을 통해 뭉친 자궁을 풀어줬다.


초기에는 의사들이 손에 향유를 바르고 마사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1876년 전기가 보급되면서 1883년 최초의 전기 바이브레이터가 발명되고, 이후 손이 아닌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여성의 히스테리를 치료(한다고 믿은) 것이다.

당시는 철저한 남성중심 사회, 종교와 도덕 등을 이유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솔직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여성은 억압되어 있었고, 그것은 코르셋과 페티코트 등을 착용해야 할 수 겹의 의복 양식을 통해 표현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에서 바라보는 빅토리아 시대의 행동들은 분명 진지한 ‘사실’(팩트)이지만 우습기만 하다.

(육체적이든, 사회적이든) 성에 대한 무지와 억압으로 점철된 그 시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저랬단 말이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다시 역설적으로, 미래 세대가 지금의 남녀 불평등 시대, 더 넓게는 여성 혹은 동성애 혐오 시대를 바라봤을 때 우습게 여길 수도 있을 상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극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에 눈을 뜨는 과정은 하나의 탐구이다. 쾌락과 행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바이브레이터를 직접 사용하고, 심지어 오르가즘까지 느낀다.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는 불쾌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레카’와 같이 깨달음이 찾아온 찰라의 순간으로 느껴진다.

우리 역시 지금의 만연한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탐구하는 자세로 계속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마찰이 있고, 잡음이 있을 수 있지만, 오르가즘에 오르는 과정은 그렇게 지난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대본은 미국의 작가 사라 룰(Sarah Ruhl)이 썼다. 토니상과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오르는 동시에 미국 외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높은 흥행기록을 올려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공연은 극단 행길(대표 최재오)의 10주년 기념작이자, 제38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이기도 하다. 유지수·최진석·김나미·진남수·송영숙·이은지·김동곤이 출연한다. 7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R석 5만원. S석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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