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의 4월' 지나자 움트는 대화 징조

트럼프 김정은 대화 가능성 언급, 북 대미 비판 수위 누그러져, 시기상조론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한반도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위기의 4월'이 지나고 5월이 시작되자, 대화 재개의 조짐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과거 6자회담 의장국이었던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례 없는 전방위 압박을 통해 4월 북한 핵실험 저지에 성공하자 곧바로 대화 카드를 꺼내들며 북·미 모두에게 대화 재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회의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한반도의 평화는 중국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중국 지렛대'론을 반박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왕 부장에 앞서 "북한의 정권교체가 목표가 아닌 평화적 비핵화"라고 단언하면서도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이 유일무이한 지렛대'라며 중국의 대북 압박을 더욱 가중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왕 부장은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앞세우며 "모든 이해당사자가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 대화를 통해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통신(新華通信)도 연일 북·미 간의 대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인민일보는 28일과 30일 평론과 사설을 통해 북한과 한·미 모두 자제해야 한다며 양비론적 비판에 나섰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 개발이 제재를 낳고 미사일 발사가 추가 제재를 불러오는 악순환을 더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고 한·미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에서 항상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해왔으며 군사훈련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책임이 있다"며 비판하는 식이다.

또 "한·미가 무턱대고 북한에 국제적 압력을 가하고 일방 제재하면 북한이 더 극단적인 대응 조치를 할 것"이라며 제재일변도 북핵 해법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신화통신은 30일 사설 격인 사평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려놓기'와 대화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며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만날 수도 있어", 北 "한반도 고비 넘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면(right circumstances) 나는 전적으로, 영광스럽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화 가능성을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전날 미국 CBS 방송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두고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는 26,7세에 불과했고, 아마도 자신의 삼촌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뺏으려고 했겠지만 지금껏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는 영리한 친구"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되자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적절한 환경'이 아직 구비되지 않았다며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지도자와 대면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이 시점에서 김정은과 회동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미국 역할론'을 강조했던 중국이 곧바로 환영하고 나섰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미국이 일련의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정확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긴장 정세를 회복하고 대화 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해서 더 많은 비핵화 실현을 위한 건설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월 핵실험을 포기한 북한이 5월이 시작되자 내놓은 반응도 흥미롭다.

북한은 1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의 강력한 전쟁 억제력에 의하여 조선반도(한반도) 정세가 또 한차례의 고비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향후 더 이상의 군사적 긴장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날 담화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공갈이 철회되지 않는 한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핵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며 핵보유 의지를 여전히 드러냈지만 과거에 비해 그 강도는 현저히 낮았다는 평가다.

더구나 불과 이틀 전 칼빈슨 항모전단이 한반도 해역에 진입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북한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느리고 온건한' 수준이었던 셈이다.

북한 외무성 담화 전날 이뤄졌던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와의 면담도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담당 부상'이라는 직책을 가진 한 부상이 러시아 대사를 만난 다는 점에서 러시아를 통해 미국과 대화 중재를 요청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19년 만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를 부활하면서 과거 대미 핵외교의 주역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위원으로 기용한 것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더하고 있다.

◇ 북한 여전히 중국 대화 제의에 시큰둥, 낙관론은 시기상조 시각도

5월에 접어들면서 북핵 문제가 대화의 장에서 다뤄질 수 있는 조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낙관론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대화 주체가 서로 동의해야 대화가 가능한 것인데 북한의 대화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도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라며 냉랭한 북한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기본적으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 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이 중국의 제안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계속해서 대화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당장 대화와 협상이 성사 되기 보다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에 있어서 자신들의 주도권을 유지해 나가고 자신들의 원칙적인 입장을 재삼 강조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해석했다.

매우 복잡한 북핵 문제이니 만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물밑 교섭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오는 9일 있을 한국의 대선 결과도 북핵 문제의 해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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