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국제대회에서는 김승기 감독이 더 중용됐다.
유니버시아드대회와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하며 '국제용'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특히 199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28년 만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일본과 결승(78-76 승)에서 SK 전희철 코치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김승기 감독은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1997-1998시즌 삼성에서 시작해 TG삼보(현 동부)-모비스-동부를 거치며 9시즌을 뛰었지만, 381경기 평균 5.34점 2.6어시스트를 기록한 채 은퇴했다.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상무 전역 후 한창 전성기를 누려할 시기에 무릎이 아팠다. 마음만 급했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다시 코트에 섰다. 당연히 좋은 경기가 나올리 없었다. 매일 밤 무릎이 아파서, 또 농구가 맘대로 안 풀려서 울었다.
아픈 무릎을 끌고 프로에서 9년을 뛰었다. 김승기 감독은 "지금 같았으면 제대로 수술을 한 뒤 1년 정도 쉬었을 것이다. 그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정말 매일 같이 울었다"면서 "무릎이 제대로 굽혀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무릎을 가지고 프로에서 9년을 뛰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 같다"고 회상했다.
2006년 4월 은퇴와 동시에 동부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2009년에는 전창진 감독을 따라 kt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에는 역시 KGC로 전창진 감독을 따라왔다. 코치 생활만 10년 가까이 했다.
이후 전창진 감독이 승부조작 의혹(무혐의 처리) 속에 자진 사퇴하면서 2015년 9월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2016년 1월 정식 감독이 됐다.
당연히 시행 착오도 있었다. 키퍼 사익스의 교체하려 했던 과정이 딱 그랬다. 김승기 감독도 "조급했었던 것 같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덕분에 말도 많았다.
하지만 김승기 감독은 마음을 다시 잡았다. 일단 선수들을 다독였다. 시즌 막판 흔들렸을 때는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이후 KGC는 9연승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4강 플레이오프도 3연승으로 통과했다. "공격도, 수비도 정말 대단했다"는 김승기 감독의 말대로 무서웠다.
다만 챔피언결정전은 쉽지 않았다. 사익스가 부상으로 2차전부터 결장했다. 하지만 KGC는 무너지지 않았다. 6차전에 마이클 테일러가 합류했지만, 사실상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도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2002-2003시즌 선수로, 또 2007-2008시즌 코치로, 이번에는 감독으로 정상을 노크했다. 선수와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것은 김승기 감독이 KBL 20년 역사상 최초다.
우승이 확정되자 김승기 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무릎이 아파서 울었던 현역 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