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등 ICT 공약…"창조경제와 뭐가 달라?"

민생 직결됐지만 현실성 없는 '표심잡기'…알파고·포켓몬고 뜨니 AI·AR 등 연구·개발 '급급' 장기적 안목 없어

(사진=자료사진)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신비 인하 공약이 등장했다. 민생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대선 때마다 표심을 공략하기에 좋은 단골 메뉴로 꼽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공약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공약이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대안이 없는 것은 물론, 현실과는 동떨어진 유권자 표심에만 치우쳤다는 지적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 '민생 직결' 대선 단골 공약 "통신비 인하" 봇물…"이번엔 실현될까?"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60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이제 휴대 전화는 전 국민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가 15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싸다. 대선 주자들이 통신비 인하 공약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매달 1만 1000원씩 내는 기본료 폐지하고 단말기 구매 시 이동통신사가 주는 최대 33만원의 지원금 상한제 역시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또 무료로 쓰는 공공와이파이 설치와 한국·중국·일본 3국 간 해외로빙 요금 폐지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공공와이파이를 5만개 이상 확대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데이터를 다 쓰면 무료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하는 '온 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일정 데이터를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안 후보는 또 통신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4 이동통신을 도입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데이터 2GB와 음성통화·문자메시지를 무한 제공하는 '보편요금제'와 알뜰폰 활성화 공약을 내세웠다. 또 제4 이동통신 출범과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 도입, 지원금 상한제 폐지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중저가폰 비중 확대와 저소득층 스마트폰 할인 구매 등 통신비 공약을 취약 계측 집중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소상공인이나 청년창업자에게 데이터를 추가로 제공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인터넷 강의수강료를 절반만 받겠다는 공약도 밝혔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요금인가제 폐지해 통신요금 자율경쟁을 활성화하고, 알뜰폰 지원, 선불요금제 확대, 5G 신규망 투자 장려 등을 공약했다.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지원금 상한제 폐지, 단말기 완전 자급제 도입 등도 제안했다.

◇ 여전히 추상적이고 현실가능성 희박…"표심 잡기에 불과"

그러나 업계에서는 반발이 크다. 현실적인 고민이 빠진 채 대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추상적이기만 한 표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이통사는 문 후보의 기본료 폐지 주장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본료 월정액 1만 1000원을 일률적으로 인하하면 이통3사의 영업이익 감소액은 2014년 기준 약 7조 5000억원이다. 이를 그간 영업이익에서 빼보면 기본료 폐지로 인한 적자 규모는 최대 5조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DMA) 역시 "(기본료 폐지는) 실효성이 없어 폐기된 사항인 데다 자칫하면 포퓰리즘으로 공격당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서 "만약 실행되면 즉각적인 통신사 영업익 감소로 인해 소비자들은 역으로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온 국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제안도 "민간 사업자의 요금제 설계를 정부가 강제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또 '속도 제한형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의미 없는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안 후보와 심 후보가 내세우는 '제4이동통신 출범' 공약 역시 앞서 실패했던 정책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이통 3사에 집중된 통신 시장에 네 번째 사업자를 허가해 합리적인 요금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지만 "통신 시장이 이미 포화한 상황에서 제 4통신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결국 "대선 후보들의 통신비 공약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재원 대책은 전혀 없는 등 표심 잡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는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비슷한 공약이 쏟아졌지만, 소비자 편익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 개편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4차 산업혁명 공약마저도 '뜬구름'…장기적 안목 없고 '창조경제' 전철 우려

대선 주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로 내걸고 이와 관련한 ICT 분야 공약들도 부각하고 있다.

문 후보는 국가가 4차 산업혁명 성장을 주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직속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과학기술부를 부활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겠다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정부조직을 중심으로 전기차, 사물인터넷망 등 주요 인프라를 구축하고 중소 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 등 '21세기형 뉴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안 후보는 민간에 맡기자며 맞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융합적이어서 예측이 어려운 만큼 정부가 이끄는 것이 불가능하며, 인재 양성과 생태계 기반 구축 등을 통해 민간이 주도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특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미래분야를 새로 선정한 뒤 창업 중소기업부를 설립해 제2의 벤처 붐을 유도하고, AI와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 관련 전문인력을 대거 키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심 후보 역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 위원회를 신설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부와 산·학·연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후보도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미래전략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후보도 벤처·창업 활성화 차원에서 혁신안전망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차별화된 정책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전 정부에서 강조해왔던 창업 활성화 정책과 기초과학 연구 지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팀도 "후보들이 대부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위기와 기회를 가져올지에 대한 진단이나 철학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후보들의 공약들이 정부 부처 개편에 치우쳐 있는 데다, 일자리 문제 해소를 상위 목표로 두고 4차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을 하위 정책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우리는 알파고가 뜨면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포켓몬이 뜨면 그제야 증강현실 연구에 투자한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이나 구체적 청사진도 없고 일자리 감소와 빈부 격차 확대 등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도 없어 이대로라면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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