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학자의 침묵에 대한 통찰

알랭 코르뱅의 '침묵의 예술'

“옛사람들은 침묵의 그윽함과 흥취를 음미할 줄 알았다. 그들은 침묵을 몽상에 잠기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색하거나 기도하고,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조건이라 여겼다. 진정한 미학적 탐색을 떠났던 작가들의 글에 빠져드는 일보다 침묵을 느끼기 더 좋은 방법은 없다.” _ 본문 중에서

프랑스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은 '침묵의 예술'에서 르네상스 시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 철학자, 종교인 들이 침묵을 소재로 탄생시킨 걸작을 소개하며 침묵의 유익을 확인시켜준다.

이 책에서는 침묵을 공간, 자연, 종교, 사랑, 죽음 등의 주제로 나누어 다룬다. 프랑스의 작가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너무도 가까이 있어서 내 몸처럼 느껴질 만큼.”이라고 말하며 침묵의 보편성을 이야기했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위대한 침묵이 군림한다.”며 사막에 깔린 아득한 고요를 언급했다.
침묵은 신과의 관계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스페인 예수회 사제인 로욜라는 하루에 일곱 시간씩 기도하며 신을 만났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침묵은 이점을 갖는다. 고대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도덕가는 침묵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솔로몬,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등 고대인들은 침묵을 현자의 미덕으로 삼았다.

때로 침묵은 저항하는 이들의 입을 막는 부당한 도구로 퇴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외면의 소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내면의 성숙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인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는 “입을 다무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는 제대로 말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말하는 기술 이전에 침묵하는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이길 수 있다.”는 들라크루아의 말은 음미할 만하다.

알랭 코르뱅이 찾아낸 옛사람들이 찾은 침묵에 대한 글은 소란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제대로 고독을 음미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 속으로

시인 폴 클로델은 “모든 방은 넓은 비밀과도 같다.”라고 말했다. 방은 전형적으로 내밀한 침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셸 페로는 19세기에 특별한 방, 자신만의 방, 누에고치 같은 공간, 비밀과 침묵의 장소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고 강조했다. 이 욕구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졌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밤마다 자기 방으로 파고들면서 느끼는 희열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라 브뤼예르를 인용하며 ‘어쩌면 혼자서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이들과 정반대로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커다란 불행’을 피한다.
_ 제1장 ‘침묵의 아늑함이 공간을 채운다’ 중에서

카탈루냐 만레사에 정착한 로욜라는 매일 일곱 시간씩 내면 기도를 올렸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면서도 절대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 신과 나눌 대화를 회식자들의 말로 채우려는 습관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영적인 훈련은 묵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의 의식을 숙고하고, ‘그 자리에서 관상기도’에 몰입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침묵이 요구되고, 침묵은 자연스럽게 ‘밤의 훈련’으로 이어진다.
_ 제3장 ‘침묵은 신을 만나는 가장 성스로운 통로다’ 중에서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은 꾸미지 않고도 순수한 공간인 여백과 시선을 독차지하는 대상이 끌어내는 침묵 사이의 관계에 중요성을 부여할 줄 알았다. 그의 그림에서 침묵은 ‘회상으로의 초대’이다. <야간 순찰>이 불러일으키는 매력 요소 중 하나는 ‘기이한 소리 없는 소음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렘브란트는 <폭풍우의 전경>에서 굉음과 함께 번개가 치기 직전에 폭풍우가 ‘짙은 적막’으로 예고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누구나 파이프오르간 작품이 끝날 때면 느낄 법한 침묵을 말이다.
_ 제5장 ‘침묵은 변화된 말이다’ 중에서

마테를링크는 질문으로 결론지었다.
“사랑의 풍미를 결정하고 고정하는 것은 침묵이 아닐까? 침묵을 빼앗긴다면 사랑은 아무런 풍미도 영원한 향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 중 누가 두 영혼을 결합하려고 입술을 가르는 그 침묵의 시간을 알았던가? 그 순간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사랑의 침묵보다 유순한 침묵은 없다. 그야말로 진정 우리에게만 있는 유일한 것이다.”
_ 제7장 ‘사랑의 침묵, 애증의 침묵’ 중에서

알랭 코르뱅 지음 |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24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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