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KGC인삼공사-서울 삼성의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2승2패, 두 팀이 호각지세다. 인삼공사가 앞서가면 삼성이 곧바로 멍군을 부른 형국이다.
지난 22일 1차전은 인삼공사의 완승이었다. 데이비드 사이먼(24점 9리바운드), 오세근(16점 14리바운드), 이정현(20점) 등 리그 MVP급 3인방이 맹활약했다. 여기에 22점을 합작한 키퍼 사익스, 박재한의 가드진도 힘을 보탰다. 삼성은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43점 15리바운드로 고군분투했지만 혼자로는 역부족이었다.
23일 2차전은 삼성이 설욕했다. 라틀리프(28점 14리바운드)를 임동섭(18점 · 3점슛 4개), 문태영(12점 5리바운드)이 받쳐줬다. 인삼공사는 사익스의 부상 공백이 컸다.
주장의 존재감은 3, 4차전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승부처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챔프전을 지배했다.
▲양희종 "이겨서 후배 발언 기회 주고 싶었다"
인삼공사 주장 양희종(33 · 194cm)이 먼저 힘을 냈다. 당초 26일 3차전은 인삼공사의 열세가 예상됐다. 사익스가 결장하는 데다 2차전에서 이정현(인삼공사)-이관희(삼성)의 충돌 사태 이후 비난의 화살이 인삼공사 쪽으로 더 집중됐기 때문이다. 삼성의 홈 경기이기도 했다.
과연 인삼공사는 3쿼터까지 열세에 몰렸다. 이정현이 공을 잡기만 하면 야유가 쏟아진 가운데 인삼공사는 사익스의 공백까지 64-72로 뒤진 채 4쿼터를 맞았다.
하지만 인삼공사에는 양희종이 있었다. 승부처였던 4쿼터에만 양희종은 결정적인 3점포 2방 등 8점을 집중시켰다. 이날 13점 중 절반이 넘는 득점이었다. 양희종은 도움도 양 팀 최다인 6개를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양희종의 든든한 활약에 인삼공사는 88-82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경기 후 이정현은 "(충돌 사태로) 야유를 들은 게 처음 겪어본 일이고 원정이라 심리적으로 흔들렸다"면서 "그러나 희종이 형 등 팀 동료들이 격려해줬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승기 감독은 정규리그 때부터도 "희종이가 공격 역할을 줄었지만 여전히 팀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다.
사실 이정현이 기자회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양희종의 활약 덕분이었다. 양희종은 "여론이 우리에게만 불리하게 흘러 섭섭했다"면서 "그래서 반드시 이기고 기자회견에서 떳떳하게 이정현이 사과를 하든 해명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주장의 책임감이었다.
▲문태영 "불혹? 챔프전에 힘들 시간 없다"
그러자 삼성 주장 문태영(39 · 194cm)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8일 4차전에서 역시 4쿼터 맹활약을 펼치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4차전을 앞둔 삼성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전날 다 잡았던 승리를 4쿼터에 놓쳐 역전패를 당하면서 흐름이 인삼공사 쪽으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여기에 인삼공사는 사익스 없이도 승리를 일구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과연 삼성은 3쿼터까지 5점 차까지 뒤졌다.
하지만 4쿼터 시작과 함께 문태영이 힘을 냈다. 4쿼터 12초 만에 3점포를 꽂은 문태영은 1분여 뒤 다시 통렬한 3점슛을 터뜨렸다. 덕분에 삼성은 단숨에 67-66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문태영은 3쿼터까지 5점에 머물며 존재감이 미미했다. 상대 주장 양희종과 문성곤 등의 밀착 수비에 막혔다. 그러나 승부처였던 4쿼터에만 8점을 집중시켰다. 공교롭게도 3차전 당시 양희종의 4쿼터 득점과 같았다.
사실 이번 시리즈는 이정현과 이관희의 대결에 시선이 쏠린다. 2차전 당시 충돌의 여파다. 그러나 두 팀의 상징적 맞수는 원래 양희종과 문태영이었다. 리그 최고의 득점원으로 꼽히는 문태영과 최고의 수비수인 양희종은 만날 때마다 불꽃 튀는 접전을 펼쳤다.
남은 시리즈에서 주장들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챔프전에서 두 팀의 신경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돼 선수단을 아우를 캡틴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양희종과 문태영, 어느 주장이 팀에 우승컵을 안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