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이야? 외국산이야?" 소비자 기만하는 식품 포장지

소비자 "황당", 기업 "문제없다", 정부 "판단하기 어렵다"

'오징어의 본고장-주문진에서 엄선하여 직접 제조한 믿을 수 있는 오징어'라고 하지만, 페루산 오징어를 사용한 제품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1월 식품 포장지 사진 한 장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오징어채 제품에 적힌 '오징어의 본고장 '주문진'에서 엄선하여 직접 제조한 믿을 수 있는 오징어입니다'가 문제였다.

얼핏 보면 주문진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 같지만 사실 페루산 오징어를 주문진 공장에서 가공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페루에 있는 주문진읍이라는 지방에서 잡은 듯', '페루 국적 오징어가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혔나 보죠', '말장난이 심한 오징어군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콩 100%로 국내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콩기름. 국내산 콩을 사용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국내에서 제조만 했을 뿐 콩은 100% 외국산 콩이 사용됐다. (사진=황영찬 수습기자)
주부 조 모(50) 씨도 최근 한 대형마트 식품코너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제품 포장지에 적힌 '콩 100%로 국내에서 직접 만든 콩기름' 문구를 보고 당연 국내산 콩을 사용했을 거라 생각하고 구매했던 것.

하지만 집에 와서 제품 '원재료 및 함량' 표시를 살펴보니 뒷면에 작은 글씨로 '콩 100% 외국산'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조 씨는 "처음 포장지를 봤을 때 국내산을 사용해 몸에 좋은 식품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정작 콩은 외국산이라고 하니 사기를 당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 모호한 표현 많지만 업계에선 "문제없다"

실제 시내 대형마트에서 원산지와 주성분을 모호하게 홍보한 가공식품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태양초 100% 우리햅쌀 고추장'이라고 적힌 고추장의 경우, 쌀은 국내산을 사용했지만 고추양념은 중국산이다.

한 만두 제품은 '국산 돼지고기, 엄선된 야채'라고 표시했지만, 돼지고기는 국산이고 밀가루와 고구마당면은 수입산이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태양초 100% 우리햅쌀 고추장' 제품. 내용만 보면 모든 재료가 국산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쌀은 국내산을 사용했지만, 고춧가루에는 중국산이 섞여있다. (사진=황영찬 수습기자)
주부 김명옥(50) 씨는 "포장지만 보고 깜빡 속았다"면서 "재료가 전부 국산인 듯 위장하는 게 고단수의 상술이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구 모(29) 씨는 "엄밀히 읽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데, 포장지에 적혀있는 문구 때문에 잘못 구매할 때가 많다"며 "먹거리와 연결된 것인 만큼 정직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업계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표현이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자 셀링(Selling, 판매) 포인트일 뿐, 사실이고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관계자도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원재료가 수입산이라는 것을 숨기려는 의도도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국내에서 직접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 관련 법조항들 '모호'…소비자권리 침해

현행법은 다양한 규정을 통해 소비자를 혼동하게 하는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원산지표시법) 제6조는 '원산지 표시를 거짓으로 하거나 이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제13조도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제3조 역시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막고 있다.

(사진=온라인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관련 법조항에 '혼동시킬 우려', '잘못 알게 할 우려' 등 모호한 부분이 많아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원산지표시법의 '혼동우려'라는 것이 소비자에 따라 주관적인 것"이라며 "포장지에 적힌 내용이 교묘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포장지를 본 소비자가 표시광고법상의 '잘못 알게 할 우려'라는 인상을 받더라도 표현만 가지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포장지 표시 내용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이며, 소비자 신고가 들어왔을 때 심의하는 사후 규제 방식이기 때문에 사전에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연맹의 정지연 사무총장은 "포장지 표현을 통해 원산지나 주원료와 같은 중요한 정보를 흐리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면서 "불법여부를 떠나 기업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지고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경영학부 권영준 교수도 "마케팅이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인지를 방해한다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라면서 "법적으로 오인할 수 있는 표현을 명확히 규정하고, 어겼을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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