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본인이 직접 연기자로 등장하는 이 영상은 한쪽 화면에서는 말을 하고자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아 입을 열려고 애를 쓰며 소리를 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른 한쪽 화면에서는 입을 다물고자 하지만 다물어 지지 않아 손을 이용해서 안간힘을 쓰며 입을 닫으려고 하는 작가의 연기가 펼쳐진다.
이 완전 상반된 상황은 작가의 과장된 표정 연기가 더해져 그 메세지를 극대화한다. 감상자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이 극한 대비의 상황을 접하면서, 자신의 경험 속에서 묻혀 있던 이와 흡사한 상황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대비는 개인사를 비롯해 개인을 둘러싼 가정, 집단, 사회, 민족, 국가에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 억압을 견디며 속을 끓이는 아내·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불법 체류 이주민 노동자·임금 착취 사업주, 부당한 명령 이행자·부당한 명령 지시자, 한 쪽 편에 서야 하는 약소국· 자기 편들기를 강요하는 강대국. 가정 폭력, 이주노동자 인권 유린, 블랙리스트, 사드 배치와 같은 가정 ·사회·국가의 문제거리들은 늘 목소리 약한 자와 강한 자의 갈등이다. 목소리 크기로 한다면야 매스 미디어가 가장 크다. 매스 미디어는 목소리 큰 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담기고,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배제되고 있다. 카리키스의 이 작품은 인간을 둘러싼 목소리의 불균형을 일깨우고, 균형의 절실함을 크게 외치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더 보이스 THE VOICE'전은 시각예술영역으로 들어온 목소리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목소리와 관련된 국내외 작가 12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지은 큐레이터는 "각각의 전시참여 작가들이 견지하고 있는 다양한 철학적, 미학적, 사회적 관점을 통해 목소리에 대해 사유해보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차학경(1951~1982) 작가의 'Mouth to Mouth'는 1975년에 만들어진 8분짜리 흑백 비디오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어와 한글 단어를 발음하는 여성의 입모양을 초근접 촬영한 작품이다. 한글의 단모음을 발음하는 목소리는 제스처로만 존재할 뿐 관객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목소리가 제거된 여성의 제스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차학경 자신의 경험을 병치시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차학경은 11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존 케이지가 1958년 작곡한 <아리아(Aria)>의 비정형적인 악보, 그리고 브루스 나우만의 초기 실험영상인 <립싱크(Lip Sync)>(1969)를 비롯하여, 재닌 올레슨, 라그나 키아르탄슨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공개되며, 국내작가로는 김온, 이세옥 등이 전시주제 '목소리'와 연계한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기간: 7월 1일까지
전시장소: 코리아나미술관 전관
관 람 료: 성인 4000원, 학생 3000원(대학생 포함)
전시참여작가: 국내외 작가 총 12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