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건 돈 그 이상입니다, '우정'이죠"

[노컷 리뷰] 영화 '런던 프라이드'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런던 프라이드'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런던 프라이드'(감독 매튜 워쳐스)는 서로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무리가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각종 시행착오를 겪으며 끝내 '우정'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진보적이고 열정적인 게이 마크는 매스컴을 통해 마가렛 대처의 석탄노조 탄압 실태를 알게 된다. 정부·경찰·언론이 광부들을 낙인찍고 괴롭히는 모습에서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 마크는, 즉각 '광부 지지 동성애자 모임'을 만들고 모금에 나선다.

1980년대 중반의 영국에도 동성애자를 '이상'하거나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크가 주도한 LGSM(광부들을 지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 역시 이유 없이 폭언을 듣거나 지나가며 침을 퉤 뱉는 행인을 마주쳐야 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돈을 모아 낸 이들은 이 '연대의 돈'을 당사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다. 하지만 이들이 동성애자라고 밝히자마자 전화가 끊기는 등, 광부노조는 매몰차게 후원을 거절해 버린다.


LGSM은 탄광촌인 웨일즈의 한 마을에 연락하고, 파업 중인 광부 다이를 만나게 된다. 자신들을 위해 힘을 보태 준 이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다이는 "저 게이 처음 봐요!"라고 당혹감을 숨기지 않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연대에 감사를 표한다.

게이 바 무대에 올라선 다이는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돈 그 이상입니다. 우정이죠.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지원권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는다.

물론 동성애자를 낯설어하거나 불편해하는 광부들의 마음이 쉽고 빨리 열리지는 않았다. 다이와 웨일즈 광부노조위원회 위원장 헤피나, 총무 클리프 등이 '제일 많은 금액을, 가장 꾸준히 후원한' LGSM을 동네에 초대하자고 애썼고, LGSM의 리더 마크는 강당에 올라 감사의 뜻을 전한다.

동성애자의 방문 자체를 불쾌해하며 자리를 박찬 이들도 있었고, 강당 공기도 싸늘했으나 차츰 LGSM과 마을 사람들은 가까워진다. 거리낌없이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은 우정을 쌓는다.

이때 LGSM을 못마땅하게 본 한 주민의 제보로 언론에 악의적 기사가 실린다. '변태들이 광부를 지지한다'는 타이틀의 기사로 잠시 난관에 빠지는 듯했으나, 마크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고 LGSM은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후원 공연을 준비한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마가릿 대처의 강경한 대책과 LGSM과의 연대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도한 주민 의견 투표 결과가 합쳐져, 결국 파업을 접고 복귀하게 된 광부들. 정부의 끈질긴 탄압을 끝까지 버텨내지는 못했으나, 웨일즈의 광부들은 LGSM을 만난 이후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며 '친구'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또한 생각의 '세계'를 더 키워나갔다.

처음 그들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한 주민이 LGSM의 레즈비언을 껴안으며 "너희들이 내 눈을 뜨게 해 줬어. 앞으로도 내 시야를 더 넓힐 거야"라고 하는 장면은 단적이다.

다이가 마크에게 "투쟁에 모든 걸 쏟아붓지는 마. 자신을 위해 남겨둬"라고 조언하는 장면에서는 뜨거운 동지애마저 느껴진다. 양상은 다르지만 각각 광부와 동성애자로서 지난한 투쟁을 거쳤다는 공통점 아래, 어느새 '하나됨'을 경험한 것이다.

'우정'을 나누는 일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광부들의 파업 이후 영국 노동당 강령에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을 넣자는 의견이 상정돼 통과됐다. 이는 핵심노조 한 곳의 전폭적인 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국광부노동조합이었다.

'런던 프라이드'는 동성애자들이 겪는 일상적인 차별과 멸시, 모욕을 지우거나 완화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무리와 함께하며 '연대'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따뜻한 스토리로 풀어냈다.

또한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였던 조가 LGSM의 멤버가 된 이후 비로소 용기를 내어 벽장 밖을 나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한 성소수자의 '성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런던 프라이드'는 다른 사람들의 곤궁함과 박해를 그저 지켜보거나 묵인하지 않고, 지지하고 목소리 내어 응원하는 '연대'에는 우선순위를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줬다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일방적인 잣대로 연대의 움직임을 인정·불인정 여부로 가를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는 점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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