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민심은 '문재인이냐, 안철수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었다.
전주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택시기사 이모씨는 "민심이 반반이여. 아직 (나는)결정은 안 했는데…"라면서도 "옛날 같으면 반절 안 될 거인디, 안철수가 많이 치고 올라왔어"라며 바닥민심을 읊었다.
한 손에는 세 살배기 아이를 안고 한 손에는 여섯 살 난 아이 손을 잡고 전주역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전업주무 김모(34,여)씨는 "처음에는 국정 경험도 있고 해서 문재인을 뽑으려고 했다가, 안 좋은 보도들이 나오니까 때가 덜 탄 안철수로 굳혔다가, 또 국정경험이 너무 없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다시 고민중"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김 씨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결정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반 이상은 되는 것 같다"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대선이 '여야(與野)'의 대결이 아니라 '야야(野野)'대결이 되면서 호남민들은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광주 금남로에서 마주친 김모(75)씨는 "젊은 사람들은 정한 것 같더만, 나이 든 사람들은 결정 못했다"라며 생각중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그 전보다는 나을 것이니께 그래서 선택이 더 어렵다. 진짜 어렵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 "서로 헐뜯고 하는 거 듣기 싫고 다 똑같다"면서도 "좀 더 두고 봐야겄다. 토론회 보고 좋은 사람 선택하려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양말 등을 팔며 길 한 복판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모(64)씨도 "우리 호남이 예전에는 몰표가 있었는디, 김대중 싹 몰아주고…근데 금년 대선에는 그것이 없는 거 같어"라며 "문재인, 안철수로 나눠졌부렸어"라며 반반(半半) 민심을 전했다.
실제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13~14일 실시한 여론조사(유·무선 10%·90%, 전국 1,021명 대상, 응답률 9.8%,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도 호남 응답자의 47.2%는 문 후보를, 44.8%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접전 양상을 보였다.
20·40 세대의 지지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문 후보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는 실제 굳건한 편이었다. 확신에 찬 답을 한 시민과 주저하며 답하는 유권자까지 더해 질문을 던진 20·30·40대 15명 중 13명은 '문재인'이라고 답했다.
전북대 정문 앞에서 만난 대학생 백모(21)씨는 "리더십이 강할 것 같고, 국민의 말에 귀 기울여 줄 것 같다"고 답했다.
백 씨는 "안철수도 좋은데, 어떤 위기가 닥쳤을때 문 후보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 같고, 안 후보는 생각을 많이 하다가 행동할 때를 놓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호남에 깔려있다고 알려진 반문(反文)정서에 대해서는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걸로 봐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은 ‘국정 운영 경험’이었다. 자영업을 한다고 밝힌 김모(49)씨는 “안철수 후보는 개인적으로 사업가로서는 훌륭하다고 보는데, 정치인으로서는 문재인이 낫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심모(43)씨는 "안철수 후보도 괜찮긴 한데 아직은 리더십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30대 여성은 "문 후보가 안철수 후보 보다는 경력이 많은 것 같다"고 문 후보를 선호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안 후보의 세력이 약한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구속돼도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며 "안철수 후보도 국정을 운영하려면 같이 힘 실어줄 세력이 필요한데 그게 약해보인다"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내세우는 '문재인 호남 홀대론'에 대해서는 국민의당에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반응이 많았다.
전주 덕진구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옛날 생각은 버리고 미래를 봐야하는데, 예전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과거의 정치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모(69)씨는 "안철수는 백신도 개발하고 사업가로서는 좋지만 정치적으로는 미성숙했다"면서 "우리가 동서(영·호남)로 나뉜거 얼마나 한이 되나, 그런데 호남에서도 민주당·국민의당 나눠 놓은 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광주시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 최모(63)씨는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면, 참신한 놈이 낫지 않겄어"라며 안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최씨는 "이번에 정권이 바뀌는 건 기정사실"라며 "이번에 정권 잡는 사람은 누가되아도 한 당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고, 어차피 누가 해도 혼란스러울 건 뻔한디, 그라믄 차라리 참신한 사람이 낫지 싶다”라고 설명했다.
광주 충장로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김모(54,여)씨는 "우리집은 다 안철수"라며 "이번에 목소리도 바꾸고 이미지 바꾸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면 정치도 바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음을 지었다.
교사 박모(59)씨는 "개인적으로 문재인은 좋아한다"면서도 "그래도 안철수가 나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안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내비쳤다.
박씨는 "안철수는 백신 개발해서 베풀고, 그런거 보면 성품을 알 수 있다"면서 "문 후보 개인은 좋지만, 그 주변에 있는 패권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자기들 적폐는 청산하지 않고, 네거티브로 치고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야권 후보 간 대결인데다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호남과 '연결 고리'가 있는 정당의 후보여서인지 '지역'을 이유로 지지한다는 시민은 매우 드물었다.
엔지니어 일을 한다고 밝힌 50대 남성은 "호남 적통 주장하지만 사실 둘 다 호남 사람도 아닌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