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은 한 가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정은 현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취업하지 못한 30대 자녀, 명예 퇴직했지만 부모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50대 가장, 평생을 쉬지 않고 벌어 자식에게 다 내어줬지만 자식에게 짐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80대 노모.
자녀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고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 세대를, 가장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동시에 자녀에 대한 교육비 부담과 노부모에 대한 부양 부담을 안고 있는 중년 세대를, 노모는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노인 세대를 각각 대표한다.
결국 한 자식의 집에서 얹혀살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타박은 견디기가 힘들다. 결국 노모는 집안의 식료품을 몰래 빼돌려 동네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내려놓았던 광주리를 다시 들게 된 것이다. 이 집을 벗어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연극은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룸으로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함을 부조리극으로 나타낸다.
각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사실 노인세대가 주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윤미현은 “내가 노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노인들을 관찰하며 기획한 ‘노년 시리즈 3부작’(1부 ‘궤짝’, 2부 미발표)을 발표했다. 이 연극은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거동이 불편해 쪽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독거노인들은 물건을 갖다 주는 광주리 할머니가 그저 고맙다. 말벗이 되어주고, 꼭 필요한 물건을 먹을 만큼의 소량만 저가로 제공해 주니, 이보다 좋은 마트가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치약 한 통보다는 쓰던 치약을 팔라는 노인, 우유가 마시고 싶지만 비싸니 맛이 비슷하면서도 저렴한 ‘프리마’를 구해달라는 할머니, 바깥바람을 쐴 수 없으니 작은 선풍기가 필요했다는 할아버지 등. 공연을 통해 전해지는 노인들의 사연은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해, 보는 이들을 숨죽이게 한다.
실제로 그러하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웃겨서 죽는 터무니없는 내용의 막장 드라마도, 지금 현실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막장일까.
막장이어도 드라마는 계속 볼 수밖에 없는 ‘판타지’를 제공하지 않는가. 차라리 판타지조차 꿈꿀 수 없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현실보다 살만한 곳으로 보인다.
끝내 노모는 집의 모든 것을 다 팔아버림으로써 자식들에서 독립한다. 뒤통수를 맞아 분노하는 자식은 “거봐 현실이 더 막장이잖아”라고 외친다. 노모는 그런 자식과 며느리를 보며 “네들이 내 것 가져가는 건 당연하고, 내가 네들 것 가져가는 건 안 당연하냐”며 일침을 날린다.
모두가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행복은 노력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건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의 탓이다. 광주리 할머니는 말처럼 말이다. “내가 살다가 이런 꼴을 볼 줄 알았냐. 세상 탓이지. 세상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공연은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젊은극작가전' 첫 공연이다. 23일까지 소극장 판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