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랑씨가 주목한 부분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해에 무과에 합격한 고상안이 1594년에 남긴 글이다. 그는 "그 언론과 지모는 실로 난리를 평정할 만한 재주였으나, 생김이 풍만하지도 후덕하지도 않고 관상도 입술이 뒤집혀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 있는 장수가 아닌 듯했다."고 묘사했다. 이순신 장군의 사위의 동생 윤휴는 '백호전서'라는 문집에서 "공은 체구가 크고 용맹이 뛰어나며 붉은 수염에 담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김세랑 작가는 이러한 근거와 충무공의 후손 이봉상 장군의 초상화와 19세기 조선인들의 사진들을 종합하고 상상을 더해 이러한 피겨를 만들었다. '난중일기'에는 구토나 설사와 같은 배앓이를 하는 장군의 모습이 많이 그려진다. 나이 50세 즈음에 7년 동안 전쟁을 고스란히 겪고 몸소 책임졌으니, 그 고초가 실로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치 힘들었을 것이다. 피골이 상접하고 백발로 쇠한 모습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훈민정음·난중일기전 : 다시, 바라보다' 가장 빛나는 기록 문화유산인 훈민정음과 난중일기를 새로운 의미와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회는 두 문화재 외에도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문화재들인 '동국정운', 그리고 이순신 장군 관련 유물인 '임진장초'· '장검'· '사패교지' 등이 출품된다. 이번 전시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호흡을 시도한다. 설치미술의 요소가 가미되어 대규모로 확대된 훈민정음의 지면이 관객을 인도한다.
이 전시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앞부분인 어제서문을 크게 확대하여 한 벽에 설치한다. 해례본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시도이다. 또 반대편 벽에는 한글의 28자의 자모의 원리와 내용을 현대적으로 구성해서 펼쳐놓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制字解)'에는 제자의 원리가 자연만물의 자연스러운 원리를 성실히 따라서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순신이 전란중에 벽 머리에 걸어 두고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던 칼이다. 칼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검명(劒銘)을 새겼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떠는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전시 기간: 10월 12일까지
전시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