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 조연출 죽음, CJ E&M의 사회적 살인"

대책위원회, 사측의 공식 책임 인정 및 사과 촉구

하루하루 살기 버거운 청춘을 위로하는 드라마를 만들던 한 '청춘'이 숨졌다. 살인적인 일정뿐 아니라 반복적인 비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근무한 것으로 것으로 알려진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씨는 드라마 종영 다음날 스스로 세상과 작별했다. CJ E&M 측은 '근무태만' 등만을 강조하며 이 죽음에 선을 긋고 있다.

'이 PD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에는 청년유니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주노총·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총 26개 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와 고 이한빛 씨의 유족이 참석했다.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오른쪽)이 18일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입장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왼쪽은 이 PD의 동생 이한솔 씨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대책위에 따르면, 이 PD는 지난해 1월 18일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CJ E&M PD로 입사했고, 3개월 후 CJ E&M 방송부문 tvN 제작본부 기획제작 2CP '혼술남녀' 팀에 배치됐다. 이 PD는 의상, 소품, 식사 등 촬영 준비, 데이터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대책위는 "'혼술남녀'는 전체 16회 중 절반인 8회분을 사전 촬영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전체 촬영분의 1/4이 제작되어 있던 지난해 8월 12일 촬영·장비·조명 담당 외주업체 및 소속 스태프가 교체되고, 8월 27일에서야 촬영이 재개되는 등의 사정으로 실질적인 제작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대폭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이로 인해 '혼술남녀'의 제작환경 및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의 노동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 PD는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 부여 등 심각한 노동강도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이 PD는 '혼술남녀' 마지막 촬영날인 지난해 10월 21일 실종됐고, 10월 25일 '무단결근'으로 사측 담당 국장에게 보고됐다. 이 PD가 소지하고 있던 법인카드 회수를 위해 고인의 집에 연락이 되면서 가족들이 실종 사실을 알았고, 이 PD의 사망은 10월 26일 확인됐다.

장례식 이후,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빛사건의 진상규명과 문제해결을 위한 가족대책팀'이 마련됐고, 그해 11월 8일 회사와의 면담을 통해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조사 및 방법을 논의했다.

하지만 5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과정에서 회사는 △유가족의 조사 참여 거부, 내부적인 자체조사 고집 △근무강도, 출퇴근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 공개 거부 △이 PD에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주변인사의 주관적 진술만을 토대로 '근무태만' 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대책위는 이 PD의 통신기록, 카드결제기록, '혼술남녀' 제작관계자 증언, 사측의 답변서 등을 통해 이 PD 사망사건 사실관계를 자체 조사한 결과, '신입사원에 대한 CJ E&M의 사회적 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책위는 이번 사건이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돼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드라마계의 관행'이라는 말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잘못된 조직문화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며 "'청춘들을 위로하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청춘들이 삶을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PD의 죽음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개인의 자살로 이야기하며 책임없음을 주장하는 CJ의 행태를 규탄한다"며 CJ E&M에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고 이한빛 PD 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청년유니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주노총·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총 26개 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CJ E&M은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또한 대책위는 '장시간·고강도 노동, 군대식 조직문화'로 대표되는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점을 둘러싼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책위는 이를 위해 오늘(18일)부터 오는 28일까지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드라마 현장 내 노동실태와 폭력에 대한 제보센터를 19일부터 5월 초까지 운영한다.

19일부터는 CJ E&M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오는 28일에는 CJ 본사 앞에서 '고 이한빛 PD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 추모제'를 연다.

한편, 이 PD의 동생 이한솔 씨가 페이스북에 쓴 [즐거움의 '끝'이 없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대기업 CJ, 그들이 사원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하여](링크)라는 글은 18일 오후 5시 15분 현재 24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눌렸고 929번 공유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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