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연애·결혼 중인데도 연인이 떠날까봐 불안하신가요?
② 벽 밀치기, 강제키스, 폭언…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③ "언니, 데이트폭력 쓰는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
<계속>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2016년에 발생한 사건만 집계)을 분석한 결과, 연인, 부부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82명이었다.
어쩌다가 가해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피해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걸까. 하필 그 날 가장 많이 화가 나 있었고, 그렇기에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까지 먹게 된 걸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언어·신체적 폭력이 누적되어 오다가 불행한 결과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14일 오후,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4번째 강의 '언니,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 데이트폭력 대응 내공 쌓기'가 열렸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권력'과 '통제'를 양 축으로 하는 '폭력'
송 처장은 "너무나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도 안하고 얘기도 안해서 정말 어려운 곳에 위치한 폭력이 바로 가정폭력인데, 여성에 대한 폭력 중심으로 보면 결혼 전부터 벌어졌다는 응답이 30% 정도다. 결국 데이트폭력에서 시작됐다는 의미"라며 "여성의전화에서는 데이트폭력이란 말을 시작했고 지금도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 처장은 상담 결과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는 바뀌겠지 하는 생각에 △관계가 끝나는 게 무서워서 △이례적인 상황인 줄 알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성관계를 하거나 임신을 했기 때문에 등의 답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 이런 당신의 행동, 데이트폭력일 수 있습니다
송 처장은 이날 강의에서 데이트폭력으로 볼 수 있는 통제와 물리적·언어적 폭력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 △옷차림 제한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 △내가 하는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게 함 △일정 통제 및 간섭 △휴대폰·이메일· SNS 등을 자주 점검 △써클이나 모임 활동을 못하게 함 △다른 상대를 만나는지 의심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함 △다른 사람과 통화하지 못하게 함 등은 상대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된 경우였다.
△욕이나 모욕적인 말을 함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고함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너 때문이야'라고 책임 전가 △괴롭힘 목적으로 악의에 찬 말하기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거센 비난 △화가 나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음 △물건 파손 △부담스러워하는데도 선물을 사 줌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겠다고 위협 △죽이겠다거나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 △데이트비용 반환 청구 △빌려간 돈 모르쇠 △협박이나 강요로 돈·귀중품 갈취 등은 보다 수위가 높은 행동들이다.
△세게 밀치기 △팔 비틀거나 머리채 잡기 △멍들거나 상처날 때까지 때리기 △뺨 때리기 △발로 차기 △손이나 물건으로 찌르기 △물건 집어던지기 △목조르기 △흉기로 위협 △흉기로 직접적인 상해 입히기 △기절하거나 병원 갈 때까지 때리기 △의사와 상관없는 스킨십과 애무 △원치 않는 섹스 △불쾌한 음담패설 등도 전형적인 데이트폭력의 사례다.
또한 데이트폭력이 주로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만큼, 서로 내밀한 사이고 그래서 가해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과도하게 많이 알고 있는 점도 어려운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송 처장은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 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선 피해자가 안전한 상황인지 파악할 것,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 주변에서 지지해 줄 만한 사람과 자원을 모을 것, 폭력의 흔적을 남길 것 등이었다.
송 처장은 누구나 데이트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을 상대방으로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