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 사는 천명구(52) 씨는 종종 멍해지곤 한다. 그런 시간은 3년이 다 되간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천인호 군. 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멈췄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는 "지옥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었다"고 천 씨는 말했다.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때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을 때도 많다.
"우리 아들이 그 하얀 포에 씌워서 나왔을 때, 그걸 본 순간.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제 가슴 속 큰 상처가 우리 아들이라니 정말 너무하죠."
깜깜한 배 안에서 아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천 씨는 몸서리를 친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천 씨는 아직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아들이 어렸을 때 홀로 익산에 내려와 일을 시작한 천 씨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적은 게 가슴 속 죄로 남아있다.
그래서 한 달에 대여섯 번 아들이 잠들어 있는 안산으로 향한다. 생전에 아버지를 보러 자주 익산을 찾은 아들처럼 천 씨도 아들에게 간다. 이제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천 씨를 괴롭힌다.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냈다. 그러지 말았더라면, 게임 CD를 사달라는 아들의 응석을 한 번쯤 받아줬더라면. 천 씨는 회한의 한숨을 토해냈다.
천 씨는 "돈 열심히 벌어서 아들에게 조그마한 가게라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꿈은 이제 정말 꿈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천 씨는 치솟는 슬픔을 우겨넣으며 자신을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