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비행기 안에 3시간 30분이나 갇히는 등 힘든 여정 끝에 북한에 처음 온 김 부회장은 6일 취재진과 만난 "당시 우승컵을 함께 든 북한 주장 김종민을 꼭 다시 만나고 싶은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지금은 생사를 알기 힘든 상황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김 부회장이 뛰던 시절만 해도 북한전은 져서는 안 되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그는 "그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며 "우리나 북한 모두 마찬가지였을 텐데, 비기고 나서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아시안게임 기간 식사 시간엔 북한 선수들 자리로 가 일부러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부회장은 북한 축구의 수준이 상당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우리 팀은 바나나킥(스핀킥)을 흉내만 낼 때였는데, 북측은 자유롭게 구사했다"며 "한국은 동남아 국가에서 훈련할 때, 북한은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사회주의의 축구 강국으로 전지훈련도 자주 떠나 유럽 축구에도 익숙했다. 우리보다 훨씬 강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남북 남자축구의 전세가 역전된 계기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으로 꼽는다. 북한은 당시 쿠웨이트전에서 패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국제대회 출전이 2년간 정지됐다. 그는 "이듬해(1983년) 우리나라가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에 북한 대타로 나갔는데 4강 신화를 만들었다"며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까지 진행되면서 북한 남자 축구가 힘을 많이 잃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부회장은 남북이 힘을 합치면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북한이 한팀이 된다면 세계에서 활약하는 정말 강한 팀이 될 것 같다"며 "북한은 1991년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등 잘했다. 북한은 힘쓰는 운동에 강하고 우리는 기술이 좋으니 정말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