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박원순, 대통령 말고 UN사무총장 출마하라?

박원순 서울시장 유럽 출장 동행기

박원순 시장이 지난 3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향력을 가진 싱크탱크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촛불집회와 시민민주주의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시장님, 외국에서 더 유명하신데, 그러지 말고 UN사무총장 출마해 보시는 건 어때요?"

지난 29일 오후 파리 드골공항에서 한 신문사 기자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던진 도발적 질문이다. 이날 박 시장은 파리 OECD 본부에서 회원국 대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난 뒤 동행하던 서울시 출입기자들과 오스트리아 비엔나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려던 참이었다.

'혼자 먼저 비행기 타면 뭐하냐, 그냥 여러분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며 짧은 비즈니스석 대신 기나긴 이코노미석 줄을 섰다가 예상치 못한 질문 '공격'을 받은 박 시장이 대답을 추스르고 있던 사이 다른 기자가 농담을 던졌다.

"그건 악담이네요. 반기문 총장도 대통령 선거 출마도 못해보고 퇴장했잖아요."

그제야 장난기를 되찾은 박 시장이 장단을 맞췄다.

"하기 나름이죠. 하하"

하기 나름이라고? 동행하던 기자들이 자기 귀를 의심하듯 서로의 눈빛을 살피며 박 시장의 말을 쉽게 주워 담지 못하던 찰나, 다시 박 시장이 '하지만'이라는 말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총장을 배출했는데, 또 다시 우리나라에 기회가 올 수는 없겠죠"

UN사무총장 이야기는 그 걸로 끝났다. 그 뒤에는 서울의 국제화와 도시외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비록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UN사무총장 출마 이야기는 왜 나오게 됐을까? 박원순 시장은 국제무대에서 대체 얼마나 '저명한' 인사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까?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된 박 시장의 유럽 출장을 지켜보면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그가 만난 사람들이다.

파리 시장(안 이달고), 런던 시장(사디크 칸)과는 친환경 차량 확대를 위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파리 시장은 13년간 파리 부시장을 지냈고 이어 2014년부터 파리시장직을 수행중인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다. 런던 시장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영국 하원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노동당의 촉망받는 차세대 지도자다.

이어 OECD 사무총장(앙헬 구리아), OSCE(유럽안보협력기구) 사무총장(람베르토 자니에르)을 만나 우의를 다졌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장(미카엘 헵플)과도 회동을 했다. 이 밖에 출장 도중에 만난 네덜란드 로테르담 시장(아흐메드 아부우탈렙), 요르단 암만 시장(아켈 빌타지), UN 헤비타트 사무총장(후안 클로스) 등과도 친분을 쌓았다.

유럽의 유수 언론사들도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줄을 섰었다.

오스트리아 유력일간지의 박원순 시장 인터뷰 기사. (사진=Die Presse 화면 캡처)
영국의 유력 언론사인 BBC와 이코노미스트, 오스트리아의 양대 유력 일간지인 디프레세(Die Presse, 사진), 데어 슈탄다르트(Der Standard)가 앞 다퉈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BBC 생방송 인터뷰는 방송 직전 런던에 발생한 테러 긴급 방송 때문에 취소됐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럽으로 온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파리 OECD 본부에서 OECD 회원국 대사 등 1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비엔나 OSCE(유럽안보협력기구) 본부에서는 300여 명을 대상으로 기조연설을 각각 진행했다. 세계 2대 싱크탱크라는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에서는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열었고(사진),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혁신기관(로컬리티, 소셜라이프, SIX) 대표들과 만나 토론했다. 비엔나에서는 보행도시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해외 순방에 견줄 만한 밀도 있고 접촉면이 많은 출장이다.

특히 이번 방문이 대부분 현지에서 먼저 박 시장을 초대해 성사된 경우다. 3월 말 현재 박 시장이 국제사회로부터 올해 안에 방문해 달라며 받은 초청장만 2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 김창범 국제관계대사는 2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박 시장의 사회변혁가로서의 삶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시민운동가로서 사회변화를 이끌어왔고, 이어 인구 1000만 명의 메가시티(mega city)의 수장으로 변모해서, 그것도 6년째 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는 데에 대해 선진국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 전 뉴욕시립대 교수도 그의 저서 "If Mayors Ruled the World"(2013)에서 박 시장을 혁신 시장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둘째는 영어 소통 능력이다.

비영어권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박 시장만큼 서방 세계와 원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유럽 출장에서도 모든 일정을 영어로 소화했다. 파리에서는 런던시장과 파리시장이 유럽지역 현안으로 말을 이어갈 때 박 시장이 '서울도 유럽으로 이사 오면 안 되겠냐'고 말해서 좌중에서 박장대소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인류애와 박애정신에 입각한 삶의 궤적도 선진국에 어필했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미래가 보장되는 검사의 길을 놔두고 배고픈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 등 국내외 여러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는 상금을 그 때 그 때 사회에 쾌척했다. 그가 기부한 재산만도 그동안 최소 32억 원으로 추산된다.(정확한 기부 금액을 그가 밝힌 바가 없어서 추산될 뿐이다.) 그 결과 현재 7억 원 가까이 빚을 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그의 입지 덕분에 서울시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의 자매우호 도시 57곳 가운데 32%(18개)가 박 시장 재임 기간에 관계가 맺어졌다. 서울시에 둥지를 튼 국제기구 30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개를 역시 박 시장 재임기간에 유치했다.

이런 '도시외교'는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경우 IAEA 하나를 유치해 '매일' 1500~2000명의 회의 방문객을 받고 있다. '도시외교'가 마이스 산업(회의·전시산업)의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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