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 그 한복판인 서문시장에서 '보수 적자' 경쟁을 벌인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선거의 시작점'이라고 말한 이곳에서 TK 민심을 마주하는 이들의 태도는 확연하게 대비됐다.
◇ 유승민, '만보(萬步) 유세'
유 후보는 3일 이곳에서 4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걷다가 누가 부르면 돌아가고, 구석진 상점에 들어가 허리를 굽혔다. 수행원들 사이에서도 "다리 아프다"는 말이 나왔다.
유 후보는 원칙과 명분을 앞세우며 박 전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아끼지 않아 '소신의 정치인'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힘들 때마다 찾았던 이곳에서는 여전히 유 후보를 향한 "배신자" 비판이 등장한다. 이날 '만보 유세'는 이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수행원들이 길을 막아서면 "길을 터주라"고 했고, 10여 명이 계속 그를 따라붙으며 욕설을 해도 "욕하게 두이소"라고 했다. 바른정당 의원들도 다수 현장을 찾았지만, 사실상 지상욱 대변인만 그를 따라다녔다. 현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후보는 때로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장사 잘되냐", "힘든 건 없느냐"고 꼼꼼히 물었다. "새로운 거 꼭 하셔야 됩니데이, 안 되면 큰일난다"는 격려가 뒤따랐다. 시장 길목에서 옷을 파는 한 60대 여성은 화재 피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고, 유 후보는 그를 감싸안으며 "힘내이소"라고 말했다.
◇ 홍준표 '급하다, 급해'
이 여성은 4일 홍 후보도 만났다. "잠시만요,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했지만, 수많은 수행원과 의원들에 둘러싸인 홍 후보는 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한 측근이 여성의 손을 붙잡고 뛰어가서야 홍 후보를 만날 수 있었다. 홍 후보는 "감사합니다"라며 악수를 한 뒤 직진했다. "(보수 민심에) 불을 한 번 질러보겠다"고 공언한 홍 후보가 시장을 다 돌고 떠나기까지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얼굴도 못봤다카이", "한 번 보지도 않고 갔데이"라며 아쉬워 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홍준표 화이팅", "대통령 꼭 돼야한다"는 응원 속에 홍 후보는 잠시 앉아 어묵과 떡볶이를 사먹었지만, 옆에 있는 손님들에게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그가 '속전속결'로 시장방문을 끝낸 이유는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지지해 달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 처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보궐선거를 막기 위해 경남도지사직 사퇴를 미루면서 아직 '공무원' 신분이다. 때문에 선거운동성 발언은 할 수 없다.
앞서 찾은 칠성시장에서도 그는 간담회를 제외하고 14분 만에 시장을 돈 뒤 자리를 떴다. 홍 후보는 다만 이날 지역 선대위에 당내 'TK(대구·경북) 주주'인 친박계를 전면에 배치하며 조직 다지기에 공을 들였다.
그는 시장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그 때 올 때에는 이야기가 틀려질 것"이라며 "오늘은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어 말을 다 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