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60대 상인이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후보의 손을 잡고 덕담을 건넸다. 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가 멀어졌는지, 왜 탄핵을 주도할 수 밖에 없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 함축된 한 마디였다.
허리를 굽힌 유 후보는 "오늘의 명언이네요, 잘 하겠심니더"라고 답했다. 이들의 뒷편에서는 "배신자"라는 앙칼진 외침이 울려퍼졌다. 보수의 심장 대구, 거기서도 한복판인 서문시장의 민심과 유 후보가 3일 마주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그에게 이곳은 반드시 넘어서야 할 큰 산과도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으며 비박의 길을 걷게된 그에게는 '소신의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렸지만, "배신의 정치"라는 '박근혜의 낙인'도 아직 유효하다. 박 전 대통령을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구에서는 아직도 그가 유 후보를 향해 남긴 이 한 마디가 회자되고 있다.
'혹시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캠프 일각의 우려도 있었지만, 상인들은 대체로 그를 반겼다. "나 미국식으로 하고프다"라며 덥썩 유 후보를 껴안기도 하고, "손이 명주처럼 보드랍소"라며 손을 잡아 세웠다. 한 30대 남성이 "딸 보러 왔는데, 같이 안 왔심니꺼"라고 말하자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번졌다.
한 남성은 "박근혜가 유승민이 말 들었으면 이래 됐겠나. 바른말만 하는 사람에게 배신자라 카는 건 말이 안 되는기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곳곳에서 "대구의 대변인, 바른소리하는 유승민", "새로운 거 꼭 하셔야 됩니데이, 안 되면 큰일난다"는 격려가 뒤따랐다.
또 한편에서는 10여 명이 유 후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연신 "배신자"라고 외쳤다. 이들은 바른정당 의원들을 향해 물을 뿌리기도 할 정도로 격렬하게 반발했다. 주변 상인들이 "자꾸 소리지르면 박근혜 대통령 욕 먹이는기라", "이게 뭔 망신이고"라며 말려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때 열성 지지자들이 연신 "유승민" 외치며 이들과 대치, 긴장이 고조됐지만 유 후보는 "그냥 욕하도록 두이소"라며 대응을 자제할 것을 호소했다. 종종 행인들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여가 어데라고 왔노"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럴 때마다 유 후보는 "예, 알겠습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보수후보 단일화와 관련해서도 "꼭 단일화 해야한다. 안 그럼 나라 뺏긴다"는 조언도 나왔지만 유 후보는 "절대 합치면 안 된다"는 김밥가게 여주인의 말에 "명심하겠다"고 답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대구 민심 한 가운데 선 유 후보는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그는 "저, 자신 정치를 하면서 늘 당당하고, 떳떳한 보수의 적자라고 믿어왔다"며 "저 유승민은 대구의 아들이다"라고 했다. 청중의 입에서 하나 같이 그의 이름이 터져나오자 굳어있던 그의 입가에도 엷은 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