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연·정지돈, "이번 계절에 리뷰할 책이 없다"

'문학의 기쁨'…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의 2년 간 대화

(사진=자료사진)
'말 조심, 소원 조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선생님은 흡사 고고학자의 태도로 '출판계 불황'이 얼마나 관성적이고 상습적으로 반복되어왔는지 밝히셨지요("한국 출판계는 거의 자멸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1955년 1월 23일). '한국문학의 위기/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문학의 위기는 잘 모르겠으나 저와 금정연 선생님은 위기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번 계절에 우리가 리뷰할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경숙 사태 이후 많은 수의 문학 단행본 출간이 뒤로 미뤄졌고 우리는 책을 찾아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독립 서점을 전전했습니다.
- 73쪽


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이 함께 쓴 '문학의 기쁨'이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의 오늘을 짚어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평론집이다. 책에는 2015년부터 2년 동안 두 사람이 만나 함께 나눈 여덟 편의 대화가 실렸다.

계간 '작가세계'에 연재한 다섯 편의 대담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 「한국문학은 가능한가」 「한국문학의 위기」 「우주에서 온 편지」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경기문화재단 웹진 '톡톡talktalk'에 연재한 페이퍼시네마(영화를 지면 위로 옮긴 듯 쓴 글) 중 일부에 코멘터리를 붙인 「시흥의 밤」, 그리고 소설집의 해설 「오한기에서 오한기로」(오한기, 『의인법』, 현대문학, 2015)와 「우리가 미래다」(이상우, 『프리즘』, 문학동네, 2015)가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에서 두 사람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새로운 답을 발견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아니다. "그저 가장 빈번하게 던져지는 질문이어서"가 그 이유다. 이들은 연재 당시의 요청("매 계절 신인(또는 신인에 가까운) 한국 작가의 신간 단행본을 가지고 깊이 있는 대화를 진행해달라")에 따라 세 편의 작품을 고르고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고, 결국 선정은 흔히 좋다고 말할 때 사용되는 관성적인 평가, 쉽게 통용되는 수식어에 따라 이루어진다. 첫째,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난해하다고 이야기되는 작품. 둘째, 탄탄한 서사와 문장으로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여겨지는 작품. 셋째, 독립출판으로 출간된 개성적이라고 믿어지는 작품. 그러나 이렇게 추려낸 작품을 읽고 내린 결론은 정반대의 것이다. 첫째, 어렵지 않으며 평범한 주제를 다룬다. 둘째, 탄탄하다고 하기에는 어정쩡하다. 셋째, 소설에 대한 통념을 고스란히 따른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좌초되고 만다.

「한국문학은 가능한가」에서는 공모전 당선작을 살펴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줄거리를 요약한 후에는 할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저 어떤 장면이 좋았다,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찾아온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공모전을 비판하며 활기를 띤다. 상금이라는 가짜 권위가 만들어내는 양극화, 한 번에 수백 편의 작품을 심사하여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작품에 순위가 매겨지는 현실, 암묵적으로 공모전이 지향하는 특정한 경향이 있다고 여겨지고 이것이 다시 문단에 미치는 영향 등 이들은 공모전의 문제점을 다양하게 지적한다. 2015년 여름을 통과하며 이루어졌을 이 대화는 당시 문단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작가의 표절 사건과 이로 인해 제기된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들의 대화는 한 시기를 통과하며 그 시기가 뿜어내는 기운을 일부 흡수, 또는 반사해내는 과정을 거치며 이어진다.

대화는 「한국문학의 위기」와 「우주에서 온 편지」에 이르러 서신 교환의 형식으로 변화한다.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상습적으로 반복되어왔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은 마치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없음을 감출 뿐인 문장들을 구사해내며 자신들이 처한 위기 상황, 즉 대화의 위기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한다. 시상식 뒤풀이, 술자리, 빠질 수 없는 집안일, 편지 쓰기가 가져오는 피로감 등이 이들이 봉착한 위기의 원인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지만 그 너스레는 결국 읽기와 쓰기에 대한 성찰이다. "문학의 역사가 부재할 때 각각의 작품을 논하는 우리는 부사와 형용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의 나열이 아닌 일종의 가치로서의 문학사입니다. 그것이 부재한다면 비평은 부르주아의 미식美食 취미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이것은 알튀세르의 표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따라서 무시하는) 취향의 박람회. 그러니 어느 순간 이런 의구심이 드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102쪽)

다시 쓰는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에서 두 사람은 한국문학이 관료제라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의 본질이나 심연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그 장 속에서 좀더 효과적인 배치나 구조를 생성하는 활동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강고한 관료제일수록 더욱 자신의 시스템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게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음에도 단지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곧 목적이고,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이들은 진리를 공격하는 자들이니까요. 그래서 단지 소설의 형식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격과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151쪽)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소설의 계열을 정리한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문학에서 안톤 체호프―레이먼드 카버 계열이 몹시 지배적임을 지적하고 이 "우세종"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지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더 대중적이기 때문인데, 마치 훌륭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다른 종류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비판한다. "결국 우세종은 진리의 담지자가 되고 다른 건 모두 샛길이나 실험, 외도에 불과한 취급을 받습니다."(154쪽)

책 속으로

정지돈씨는 장강명이 재능이 뛰어난 작가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데 그걸 또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해서 의미화합니다. 커다란 재능이죠. 저는 어쩌면 장강명이 21세기 한국문학의…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어쨌거나 저는 이 작품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봉합하는 방식이 불편합니다.
-66쪽

금정연 , 정지돈 지음 | 루페 | 240쪽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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