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 본 '한국'

[노컷 리뷰] 연극 '목란언니'

연극 목란언니.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탈북자가 남쪽으로 오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탈북자가 다시 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북의 체제가 혹은 굶주림이 싫어 왔는데,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나 보다.


연극 '목란언니'는 탈북자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만만치 않은 우리 현실을 은근슬쩍 꼬집는다.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한국에 오게 된 탈북여성 조목란은 북에 있는 부모를 서울로 데려와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까지 사기를 당했다.

한국에서 삶에 회의를 느낀 목란은 5000만 원만 주면 북으로 보내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에 룸살롱 마담 조대자의 첫째 아들 간병인으로 취직한다.

조대자는 스스로 "몸 팔아, 술 팔아" 자식들을 키웠다고 외치는 독한 인물이다. '경쟁, 승자독식'만을 자식에게 강조한다.

연극 목란언니.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그에게는 태산, 태강, 태양 삼 남매가 있다. 태산은 옛 애인을 못 잊어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태강은 대학 철학과 교수지만, 대학에서 철학과를 폐지하자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태양은 무명작가이다.

목란의 등장은 조대자의 가정을 변화시킨다. 조대자의 눈에 비친 목란은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인물이다. 조대자는 "유신정권 이후로 그런 가시내를 본 적이 없다"고 평한다.

목란의 극진한 노력에 태산이 조금씩 회복하자, 조대자는 아들 곁에 계속 두고자 '5000만 원'을 빌미로 목란을 며느리로 삼으려 한다.

5000만 원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며느리가 되겠다고 목란은 답하지만, 대자가 룸살롱 문을 닫고 도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간다.

어떻게든 5000만 원을 구한 목란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월북을 시도하지만 결론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북이 아닌 제3국으로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연 중 목란이 북측 말로 불렀다, 남측 말로도 불렀던 '사랑의 미로'를 제3국의 언어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그렇게 마무리된다.

연극 목란언니.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은 탈북자를 소재로 탈북자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탈북자의 시각으로 본 한국사회를 이야기한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는 물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 당연히 여기던 것들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말하기 위해 탈북자를 화자로 내세운다.

극에서 목란은 경계인인다. 남에도 북에도 속하지 못했다. 심지어 탈북자 무리와도 다르다.

다른 탈북자들은 남에서 어떻게든 살려고 공연도 하고, 거짓 간증도 하고, 뒤로는 브로커 일을 한다. 하지만 목란은 북의 '오마니'를 보러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연극 목란언니.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오마니'와 같이 살 수만 있으면 되는 목란에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남남 처럼 사는 조대자 가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가정은 깨어져 있으며, 개개인도 결핍되어 있다.

조대자 가정의 구성원들은 목란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볼 뿐이다. 태강은 '한번 꼬시려는', 태양은 '시나리오에 도움을 주는' 대상으로 목란을 대한다.

심정적으로 경계인이었던 목란는 공연 말미에 신체적으로도 경계인이 된다. 자발적 선택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극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 제3국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남도 북도 비정상인 상황에서 목란이 있어야 할 곳은 결국 제3지대뿐이니.

암울한 내용이지만 극은 재밌다. 맛깔나는 언어가 극의 풍미를 높인다. 빠른 전개가 정신 없는 면도 있지만, 이런 무거운 내용을 느린 속도로 전개했다면 오히려 보는 내내 힘들었을 수도 있다.

공연은 4월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한다. 3만 원.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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