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온갖 풍파에 긁힌 채 다른 배에 의지해 인천항이 아닌 목포항까지 오는 데 그쳐야 했다.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가 끝이 난 이날,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를 뒤덮은 하늘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295명의 넋들은 아직 오지 못한 9명을 기다리며 세월호의 귀항을 차분히 지켜보는 듯 고요했다.
분향소를 찾은 김태형씨(42·서울)는 "전직 대통령 (구속) 속보를 보고, 소식을 알리고 싶어서 왔다"며 "이제 곧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니, 제발 거기 좀 있어 달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왔다"고 말했다.
◇ "끝 아닌 시작…" 진상규명 그날까지
분향소를 지키고 섰던 유가족들도 세월호를 마중하러 이날 새벽 1시쯤 목포신항으로 떠났다.
유가족 대기실에는 이우근씨(고(故) 이정인 군 아버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곧 돌아올 세월호 참사 3주기 준비로 바쁜 듯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순간을 지켜보려 뜬 눈으로 밤을 샌 이씨는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씨는 "4년을 싸웠지만 너무 바위가 컸다. 정권이 두 번은 바뀌어야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우연찮게 (세월호) 7시간이 나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구속이 안됐다면, 세월호는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은 유족들 전화도 받지 않던 해수부가 박근혜가 탄핵되니까, (세월호) 인양한다고 전화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 인양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분명히 했다.
이씨는 "3년이 다 됐지만 세월호가 물속에 있었을 때는 아무 것도 진행된 게 없었다. 세월호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며 "(인양이) 끝이 아닌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의 억울함이 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와 4년여 동안 사투를 벌이는 동안 유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컸다. 70여명의 유가족들이 사고 원인을 직접 밝히겠다며 이른 새벽부터 짐을 싸 땅 끝으로 내려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참사 당일 정부에 해 준 건 달랑 천막 하나였다. 이번에도 해수부는 컨테이너 2개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 마저도 오후 6시 이후에는 나가야 한다"며 "장기간을 가야하니까, 다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모두 내려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유족들은 세월호가 거치된 철조망 밖에서 노숙을 해서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씨는 "막바지가 아니고, 이제 시작이다. 박근혜, 김기춘 그들에게서 미안하다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없다"며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끝를 봤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가 육상 부두에 거치되기까지는 1주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거치가 완료되면 선체 안전도 및 위해도 조사, 방역 등을 거쳐 미수습자 수습, 선체 정리 작업이 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