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바라보는 해경…"속죄하는 마음으로 근무"

"죄인이 된 심정으로 해경이라 말도 못하고 다녀"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반이 31일 오전 7시 사고해역에서 목포 신항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어찌 됐든 간에 세월호 구조기관이 우리였잖아요. 원죄는 어쩔 수가 없어요. 항변할 것은 많지만, 겸허하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요"

한 해양경찰관의 말이다.

세월호가 지난달 23일 1073일의 기나긴 기다림 끝에 떠올랐지만, 세월호 인양을 바라보는 해양경찰관들의 심경은 어느 누구보다 무겁기만 하다. 해경이 보다 적극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도 있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G 경사는 "많은 분들이 희생돼서 안타깝고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들을 빨리 찾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경이 자체적으로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H 경사는 "세월호 인양이 늦은 감이 없지 않고, 안타까운 심정이고 좀더 많은 분들이 구조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심경을 피력했고, C 경위는 "미수습된 시신들이 빨리 수습되고 유가족들도 생업에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세월호 참사로 고귀한 295명이 몸숨을 잃었고, 9명은 아직도 수습되지 않았다. 부실 구조 책임으로 목포해양경찰서 123정의 김경일 정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상당수가 사법처리됐고, 해양경찰청은 해체돼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바뀌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해경이 해체되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K 경위는 "세월호 사고 전에는 모든 조직이 역동적이었지만 세월호 사고가 난 뒤에는 패배의식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침체가 됐다"며 "죄인이 된 심정 때문에 해경이라고 말도 못하고 다녔다"고 했다.

◇ "더 많은 권한 있는 관계부처 책임까지 우리가 져"

하지만 일각에서는 더 많은 권한이 있는 관계부처 책임까지 떠안게 됐다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L 경위는 "구조를 다 못한 부분은 우리 책임이지만 그와 같은 선박사고 발생과정에서 우리보다는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관계 부처가 있는데, 저희가 그 책임까지 다 뒤집어 쓴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사법처리된 사람들은 주로 세월호 관계자(이준석 선장, 항해사, 기관장, 승무원) 및 청해진해운 관계자(김한식 대표, 임직원), 세모그룹 관계자 등이었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당시 구조·지휘 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처벌을 피해갔다.

특히, 해경은 구조책임이 있는 자신들의 잘못도 크지만, 해양수산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참사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L 경위는 "세월호 참사는 불법증축, 부실한 여객선 안전관리, 이원화된 VTS(해상교통관제센터), 해양수산부 고위관리의 해운조합 낙하산 인사 등이 어우러진 사고였다"며, "이런 면에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해양수산부의 책임도 크다"고 밝혔다.

C 경감은 "해양경찰관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마땅히 벌을 받는 게 맞지만 벌을 받는 것이 여론에 치우친, 소위 마녀사냥식 처벌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H 경사는 "언론에서는 구조를 안했다고 말하는데 (선박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아예 구조를 안 한 것처럼 오도가 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해경은 상당수가 사법처리되거나 퇴직, 강등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선원들만을 구조하고 승객 퇴선 조치를 소홀히 한 목포해경 123정의 김경일 정장이 징역3년(대법원 확정)을 선고받았다.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은 해임됐고 김문홍 목포해경서장은 총경에서 경정으로 1계급 강등됐으며, 최상환 해경 차장과 박종철 수색구조과장 등 3명은 언딘 특혜 의혹으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해경 졸속 해체…부활 목소리 일어

(사진=황진환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지난 2014년 5월 부실 구조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 해체를 전격 선언했다. 국무위원들과 한 차례 논의도 없이 졸속으로 한 결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저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그냥 놔두고는 앞으로도 또 다른 대형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해경이 해체되면서 해양경비기능은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각각 넘어가면서 해경은 6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양경찰관들은 해경 해체가 졸속으로 결정된 만큼 부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H 경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모들과 의견교환 없이 해경 해체를 단독으로 결정한 부분이 잘못됐다고 본다"며 "휴전선이 뚫렸다고 해서 육군을 해체시킬 것도 아닌데, 참 그게 불합리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 경위는 "해양경찰은 명예와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부서"라며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 나갈테니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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