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작가, '82년생 김지영' 주인공으로 소설 쓴 까닭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이 '열풍'이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지난해 10월 출간된 한 편의 소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조남주 작가가 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소설은 30일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 전체 판매순위 7위(3주 간 종합 TOP10)를 기록 중이다.


국회의원들도 앞다투어 '82년생 김지영' 읽기에 가세했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지난달 초 트위터를 통해 이 소설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좀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강추!"라는 소개글만으로, 책에 대한 평가를 가늠할 수 있다.

(사진=금태섭 의원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아예 300권을 구입해 의원 전원에게 보냈다. 그는 "'82년생 김지영'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선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원인에서 눈을 돌리고 현상에만 매달리는데 답이 나올 리가 있겠느냐"며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10년 후에는 '92년생 김지영'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는 장문의 편지를 동봉하기도 했다.

SNS 상에서도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소설의 일부가 담긴 이미지 파일 혹은 텍스트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김지영 씨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어떤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 아니, 무엇보다 왜 하필 '82년생'인 '김지영'이어야 했을까.

◇ 왜, '82년생' '김지영' 씨였나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한겨레 글쓰기 창작학교 '글터' 론칭 기념 특강 '글쓰기의 힘' 강연이 열렸다. 강연자로 나선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의 탄생 배경을 들려주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조 작가의 첫 작품은 아니다. 그는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작품으로 2011년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아 데뷔했고, '82년생 김지영'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16년 빛을 본 책이다.

조 작가는 '현재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긴다'는 목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면 후자에 더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을 만큼,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의 삶'은 소설을 관통하는 단단한 주제였다.

2015년 4월 28일, 옹달샘(왼쪽부터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여성비하 등 막말 논란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여성 현실을 자각하고 이것을 작품으로 써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2015년이었다.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해였다.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의 저속한 표현으로 여성비하 발언을 쏟아냈고, 연인 간 폭력을 코믹하게 그린 웹툰이 등장했는가 하면,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무려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희대의 글을 남겼다. 조 작가는 이때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를 감지하고 '자각'한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왜 여자는 뭘 해도 욕을 먹을까. 소설의 시작은 이 물음에서부터였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다녀도, 화장을 안 해도, 보이는 데서 화장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안 낳아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정말 대한민국 여성들이 그렇게 욕 먹을 사람인지 궁금해서, 여성취업·출산 및 보육·여성 대상 범죄·페미니즘 일반 등 크게 네 줄기로 자료를 모은 그는, 이것들을 '내 언어'로 다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 작가는 거부감 없이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보편적 인물의 일대기'로 큰 틀을 잡았다. 산아제한이 남아있던 시기여야 했고, 청소년기에 IMF를 경험하고 '무상보육'이 시작된 2012년 전후로 출산과 육아 경험한 세대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서 '82년생'이 주인공이 됐다. '지영'은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가장 인기있는 여자아이 이름이었고, 거기에 가장 흔한 '김 씨'를 붙였다. '82년생 김지영'의 탄생 배경이다.

◇ 진짜 감정이입할 수 있어, 막힘 없이 썼던 소설

살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에, 원하는 시간에 규칙적으로 작품을 쓸 수는 없었다. 아이가 유치원 간 시간, 아이와 남편이 잠든 시간 등 자신의 시간을 쪼개야 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을 쓸 적에는 '막힘이 없었다'.

조 작가는 "워밍업이 필요없었다. 제가 진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느끼는 불평등이 (안에 담겨) 있는데 너무 제 얘기 같은 거다. 앉자마자 줄줄줄줄 쓰게 됐다. 장편 하나 쓸 때 몇 년 걸렸는데 (이건) 석 달 안에 썼다"고 밝혔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그는 이 작품을 쓰면서 여성들에겐 '공감'을 얻고 싶었고, 남성들에겐 몰랐던 부분을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조 작가는 "거부감 없이 많이 읽혔으면 했다. (극중 남성 인물이) 그렇게 괜찮지는 않지만 그렇게 또 이상한 사람이 없다. 범죄로 느껴질 만한, 사건이나 사고라고 느껴질 만한 일도 뺐다. 처음에 데이트폭력, 유산 등을 생각했지만 극적 상황을 피했고, 남성이 '직접 가해자'가 되는 상황은 쓰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좀 신경썼다"고 설명했다.

이날 조 작가는 작품 수정 과정에서 제일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도 공개했다. '남성 인물들'의 이름을 지운 것이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 최소 2명이 등장하고,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으며, 이 대화 주제가 '남성' 아닌 다른 내용이어야 한다는 '백델 테스트'를 역으로 적용했다. 백델 테스트의 '여성' 부분을 '남성'으로 고쳤을 때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없는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었다. 소설 속에 이름이 붙은 '남성'은 김지영 씨의 남편 한 명뿐이다.

대신 오랜 시간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불려지지 않았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는 이름을 붙여줬다. 오미숙, 고순분이라는. 팀장, 선배언니조차도 제각기 어울리는 이름을 얻었다.

작가의 높은 몰입력은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졌고, 이 '생생한 기록'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내심 김지영 씨를 이 안(소설)에다가 가둬둔 것 같은 부채의식, 죄책감 같은 게 계속 남아있게 됐다. 지금 저한테 있는 질문, 고민, 과제가 있다. 이 소설은 결국 끝나 책으로 나왔지만 지금의 이 무거운 마음들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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