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침묵' 깬 전두환·이순자 씨의 '궤변'

전두환(86) 前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78) 씨가 오랜 침묵을 깼다.

자서전 출간을 통해서다. 일부 보수 언론매체와 인터뷰도 가졌다. 1988년 2월 청와대를 나온 지 30년 만이라고 한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씨는 자서전에서 남편을 '그 분'으로 부르며, 국가에 대한 순정과 충정을 바친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재임 기간 '그 분'이 흘린 땀은 진실로 아름다웠다"고 표현했다.

이 씨에게 전 前 대통령은 남편이겠지만, 적어도 그는 한국 현대사에 암울한 그늘을 드리운 장본인이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영령 앞에서 결코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30년 만에 침묵을 깨며 내 놓은 일성은 다름 아닌 '전두환을 위한 변명' 이었다. 압권은 "자신들도 5·18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황당한 궤변(詭辯)이다.

'궤(詭)'는 말(言)과 위험(危)이 합해진 것으로 '위험스런 말',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를 뜻한다.


이 씨는 12·12와 5·18을 모두 '사태(事態)'로 부르면서, 남편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검찰과 언론에 의해 '광주 학살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는 남편을 법정에 세운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집권야욕을 가진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과 5·18 사태를 부추겨 정권탈취에 성공했다는 조작된 시나리오를 법의 이름을 빌어 '사실화' 시킨 역사왜곡의 굿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지금이야 사면 복권된 마당에 못할 말이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재판을 굿판에 비유한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파렴치한 부정(否定)이 아닐 수 없다.

전 前 대통령은 1995년 구속 수감돼 사형을 구형 받았고,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의 책임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 이듬해 복권됐다.

5·18 영령 앞에 무릎 꿇고 참회와 반성을 해야 할 사람들의 가당찮은 역사왜곡과 거짓주장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관련 혐의를 철저히 부인하고 있는 모습의 데칼코마니(decalcomanie) 같다.

그런데 어쩌면 이순자 씨의 자서전은 노이즈 마케팅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본편은 다음 달 초에 출간될 예정인 2천 쪽 분량의 전두환 회고록 시리즈 3권이다.

내용이야 상식을 가진 일반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터다. 전두환 개인과 제5 공화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없애려는 정당화 시도 일색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이순자 씨의 자서전과 회고록은 큰아들인 전재국 씨가 발행을 맡았다.

온 가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 학살자'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형국이다.

그러나 역사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따라서 진정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면 그 길은 왜곡과 거짓이 아닌 참회와 반성이어야 한다.

전두환·이순자 씨의 자서전이 회고록(回顧錄)이 아닌 참회록(懺悔錄)이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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