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할매들의 막춤…무대·객석 모두가 행복했다

[노컷 리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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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한 편이 시작한다. 화면 속 할머니들이 한 분씩 춤을 춘다. 손은 위아래로, 엉덩이는 씰룩씰룩. 트위스트 같은 스텝도 밟는다. 정해진 동작은 없다.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길 뿐. 무슨 춤이냐고? 모르겠다, 그냥 막춤이다.

장소도 각양각색. 버스 정류장, 시장, 마을회관, 슈퍼, 논, 집앞, 길거리, 식당, 관광버스 등. 주변에 있는 물건은 훌륭한 소품이 된다. 팔려고 내놓은 양은냄비 뚜껑을 꽹과리마냥 두드리고, 논일을 하던 할머니들은 모판을 들고 춤춘다. 심지어 돼지 머리를 파트너 삼아 춤추기도 한다.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춤추며 웃는 할머니와 근엄한 표정의 할아버지는 대조적이다. 관객은 한 화면 속 상반된 표정을 짓는 두 명이 우습다. ‘큭큭큭’ 웃음 소리가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춤추는 할머니들은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신이 나 몸을 흔드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는 건 겉치레에 불과하다. 그렇게 10여 분의 우스꽝스러운 영상이 지난 뒤 자막이 떠오른다. ‘웃으면 복이 옵니다. 춤추면 복이 옵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이어 무대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30여 명, 그리고 전문 댄서 등 총 40여 명이 뒤섞여 신나게 몸을 흔든다. ‘시의 찬미’,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 ‘단발머리’, ‘끊어진 테푸’, ‘둥지’ 등 어르신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진다.

무대는 난장판이다.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마이크가 주어지자 “하하하” “깔깔깔” 큰 소리로 신나게 웃어재낀다. 모두 행복하다. 남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무아지경으로 몸을 흔드는 할머니들이, 처음에는 부끄럽다가 이제는 부럽다. 그저 바라보며 웃기만 하던 관객들도 어느새 몸을 흔든다. 몸이 근질거리는 거다.

1시간이 넘는 공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가 끝난 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안은미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올해 ‘갈등’이라는 기획을 하면서 우리를 초청했다. 뭘 갈등하는지 모르겠지만, 풀고 가시기 바란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무대로 올라와 같이 춤추자고 제안한다.

관객들이 올라가고 무대에서는 또다시 춤판이 벌어진다. 그렇다, 뭘 그리 갈등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나. 짧디 짧아 꿈같은 인생, 한바탕 즐기다 가면 그만인 것을. 함께 몸을 흔들자.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흔들어 재끼자. 모두 행복하자. 웃으면 복이 온다지 않는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2010년 10월, 안은미 안은미컴퍼니 대표는 4명의 무용수, 3대의 카메라와 함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돌면서 마주치는 할머니들마다 춤을 권하고 그 춤추는 몸짓을 기록했다.

두산아트센터와 안은미컴퍼니가 함께 진행한 ‘한국인의 몸과 춤’ 리서치였다. 기록된 분들은 적게는 60대, 많게는 90대에 이르는 대부분 평범한 시골 어르신들, 평생 춤 한번 제대로 배워본 적 없는 분들이었다.

안은미컴퍼니는 2011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처음 선보였다. 제목이 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냐고?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는 할머니들의 몸짓은 소박하지만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관객들은 할머니들의 몸짓을 통해 삶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게 된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스위스, 독일, 벨기에 외에도 2014년 프랑스 파리 여름축제 초청작으로 선정돼 현지 언론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르 몽드>(Le Monde, 2015)는 "무용수가 아닌 할머니들의 몸이 어느 옛날이야기보다 더 실질적인 역사책 그 자체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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