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방송된 'SNL코리아9'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는 모습을 패러디하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아홉번째 시즌의 시작을 알렸다.
드라마 '피고인'을 패러디한 콩트에서는 최순실로 분한 김민교가 등장했다. 지성 역을 맡은 정상훈은 국민들의 심경을 대변하듯 김민교의 멱살을 잡으며 "내 나라 내놔"라고 외쳤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갈등을 담은 '광화문 연가' 콩트도 눈길을 끌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촛불 집회 참가자 정상훈과 태극기 집회 참가자 김준현이 서로 공통점을 발견하고 친분을 쌓게 되는 이야기다. '미운 우리 새끼'와 '프로듀스 101'을 섞은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이라는 코너는 대선 출마 정치인들을 독하게 풍자했던 '여의도 텔레토비'를 떠올리게 했다.
시사 코너인 '위켄드 업데이트'는 이제야 제 기능을 하게 됐다. 앵커를 맡은 신동엽은 SNL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뜨거운 사회 이슈를 다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 각오대로 김준현이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소식을 전했다. 신동엽의 마지막 멘트는 세월호의 무사 인양을 기원하는 한 마디였다. 방송 내내 'SNL코리아9'는 코미디가 사회·정치 상황에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 풍자 코미디가 자취를 감추자 'SNL코리아'에는 끊임없는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을 당시, 어떤 프로그램보다 강하게 정치인들을 풍자하고, 시국을 반영했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실제로 tvN 콘텐츠를 관리하던 CJ 그룹 이미경 부회장은 청와대로부터 퇴진을 압박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로 결국 'SNL코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본래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사회·정치 풍자의 기능을 잃어갔다. 약자를 향한 혐오 섞인 풍자나 웃음만을 유발하기 위한 코미디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자 드디어 코미디 프로그램들도 숨통이 트이고, 제 역할을 다하는 모양새다. 'SNL코리아'가 이번 시즌에 다짐했던 대로, 정치 상황이나 외압에 굴하지 않는 뚝심 있는 코미디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