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공부겠죠? 학교생활에 적응하려면 동아리도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도 친구랑 어떤 동아리 할지 이야기한 걸요. 같은 학과 친구들이 다 저보다 많이 어리다 보니 잘 지낼 수 있을지, 고민도 돼요."
1년 6개월 전 북한에서 남한으로 왔고, 동국대 회계학과 17학번으로 입학한 정서현(26)씨. 서현 씨의 고민도 여느 새내기들과 다르지 않았다.
◇ 아코디언 꿈나무, 남한에 첫 발을 딛다
서현 씨는 북한에서 13살 때부터 아코디언을 연주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경험을 살려 군악대로 복무했다. 매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설맞이 공연'에서 합주, 3중주 무대에 섰던 기억은 특별하다. 시 단위 규모로 열리는 큰 행사인 만큼 인기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처음 무대에 설 땐 엄청 긴장됐죠. 하지만 2년, 3년 계속 무대에 서다 보니 즐기게 됐어요. 모르는 사람도 지나가다가 '너, 아코디언 하는 애 아니야?'하고 알아봐주고. 저는 출연자라 설맞이 공연 티켓을 무료로 몇 장 받는데, 학교 친구들이 서로 받고 싶어 했어요. 혹독하게 아코디언 연습 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만큼 자랑스럽고 행복했어요."
북한에서 군대생활하고 있을 때 서현 씨는 어머니로부터 '남한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 제대 1년 후 북한을 나왔다. 중국, 베트남, 태국을 전전하다 6개월 만인 2015년 6월에 남한 땅을 밟았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본격적인 남한 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사회적응 교육을 받게 된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하나원은 북한이탈주민들의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고, 사회·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정부 기관이다. 하나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일과 시간이 끝나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등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서현 씨도 여느 북한이탈주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원에서 지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언어'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남한에서 사용하는 일상어에 외래어의 비중이 높아서다. 서현 씨는 "태국에 있을 때 만났던 선교사 분들이 '한국에선 외래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말해 주셨다"며 "북한에서도 음악을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못 했던 지라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현 씨는 하나원에서 지내는 동안 특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몰라서 창피한 것보단 조금이라도 알고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나원에서 주는 외래어 책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하고 단어를 외웠다. 자습실에서 영어 방송을 틀어 주면 꼬박꼬박 자리를 지키며 몇 시간이고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수다도 떨고 놀고 싶고, 피곤해서 공부하기 싫을 때도 많았죠. 그래도 하나원에서 공부한 덕에 남한 생활에 좀 더 빨리 적응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TV 광고에서도 영어를 정말 많이 쓰더라고요. 북한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가 전적으로 절 챙겨 주셨는데,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이제 제가 어머니께 알려 드리는 것도 많아요."
◇ '북한에서 왔다는 거, 숨길 수 있어요?'
하나원에서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서현 씨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려고 해도, 뭐든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현 씨는 회사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카운터를 보며 한 달을 일했다.
"면접을 볼 때, 일하는 동안 북한 사람이라는 걸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북한 출신인 게 하나도 알려지지 않게 행동할 수 있냐, 그게 계약 조건이기도 했고요. 회사 내 분위기나 외부 이미지에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다른 직원들 앞에서는 그냥 강원도에서 왔다고 얼버무렸고요."
정해진 매뉴얼을 외우고 여기에 따라 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서현 씨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사회생활'을 더 많이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북한에서 온 걸 숨겨야 하니까 잘 몰라도 아는 척을 했어요. '연예인 누가 예쁘지 않아?' 하고 물어보면 '어, 어……. 그렇지.' 하고 대답해놓고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봤어요. 일이 끝나면 회사 일보다 연예인 정보를 더 많이 외웠던 것 같아요. 그래야 동료들이랑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억양과 말투를 숨기는 데도 애를 먹었다. '혹시 내가 이렇게 말하면 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뉴스를 켜 놓고 아나운서들의 말투도 열심히 따라 했다. 서현 씨는 "20년 넘게 써 오던 말투를 숨기려니 꼭 외국어를 쓰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밖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면 집에 들어올 때쯤 녹초가 되곤 했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서현 씨는 회사에서 일하며 꿈을 찾고 싶었다. 한 달에 120여 만원 남짓 되는 월급에 반복적인 업무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이 보람차다면,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5년, 6년 넘게 일한 선배들이 '입사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하고 공허한 마음을 털어놓을 때마다, 서현 씨의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다. 북한에서 왔다는 걸 숨겨서라도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도 흐려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서현 씨는 결국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와 자격증 학원을 등록했다.
"회계 관련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던 5개월 동안은 후회 없이 공부했던 것 같아요. 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언니, 오빠들이랑 어울려 지내면서 열심히 물어보고 복습하고요. 시험 직전에 공부하면 잘 된다고 해서 새벽까지 공부하기도 했어요. 대학 진학도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회계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땐 생각도 못 한 일이죠. 사람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말을 그때 많이 느꼈어요."
북한에서 온 친구와 함께 봉사활동도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한 번도 '봉사활동'이라는 걸 접해본 적이 없었던 서현 씨에겐 신기할 따름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한 몫 했다.
"북한 생각이 많이 났어요. 북에는 정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먹을 걸 훔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든요. 북한에서도 도시락 나눔 같은 봉사를 하면 좋을 텐데."
밥과 반찬을 직접 준비해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면서, 서현 씨는 "스스로가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한에 와서 사는 곳, 대학 등록금 등 지원받은 게 많아요. 처음엔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나눔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뿌듯하기도 했고요."
'대학생'이라는 남한에서의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서현 씨. 서현 씨는 "첫 학기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아싸'가 된다고 하길래, 새벽부터 PC방에 가서 초조하게 기다렸다"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공부 말고도 17학번 새내기 서현 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10여년 동안 아코디언을 연주했던 경험을 살려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5~6살 어린 학과 동기들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서현 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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