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1등 항해사 강원식은 배가 좌현으로 기울고 배의 균형을 잡는 힐링펌프가 작동되지 않자 곧 배가 침몰할 것으로 인식하고 오전 8시 55분경 최초로 제주 해상교통관세센터(VTS)에 구조 요청을 한다.
"본선(세월호)…아…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가 있습니다."
당시 세월호에는 승무원 33명을 비롯해 443명의 승객들이 승선해 있었다. 앞서 이 배에 승선한 단원고 학생이 119에 최초 신고를 한다. 그 시각이 08시 52분경이다.
하지만 선장 이준석과 선원들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말만 승객들에게 남긴 채 해경 123정을 타고 떠나 버렸다. 현장에 도착한 해경도 침몰 위험을 알았지만 바닷속에 뛰어든 일부 승객만 구조했을 뿐 구조다운 구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세월호는 미스터리 투성이다. 그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시에 최초 보고를 받았지만 무슨 조치를 했는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 없다. 오죽하면 헌재 탄핵심판에서 이진성 재판관은 "오전 9시 조금 지난 후부터 TV에서 보도했는데, 방송을 못 봤느냐"라고 물었을까.
사람들은 이 미스터리를 '세월호 7시간 의혹'이라고 불렀다. 정부는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 탓이라고 전가시켰다. 그 이후에도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쌓이기만 했다. 모든 의혹의 중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수학여행 가던 꽃다운 고등학생들이 이유도 모른 채 차가운 바닷속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구조 잘못으로 처벌 받은 공무원은 해경 123정장이 유일했다. 말단 직원 한명이 재난 상황에서 인명구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 책임을 도맡은 것이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이뤄졌지만 세월호 선원과 선박회사, 해운협회 등 주변인만 형사처벌하고 인명구조에 실패한 고위 관료들은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 대신 전임 박근혜 정부는 구조 실패로 위기에 몰리자 일반 국민에게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적대시하도록 부채질했다. 그 날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가족들을 보상에나 눈 먼 사람인 것처럼 호도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진혼할 생각은 안하고 그 반대로 부모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고립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세월호 부실대응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축소시켰다. 감사원은 "청와대도 감사했지만, 중대한 문제는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수사에도 개입하고 수사를 방해했다.
부모들은 숨진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고 달래주려 했지만 대통령은 그것조차 보듬지 못했다. 가족들의 피눈물을 '억지주장'처럼 내세워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도구로 이용하는데 급급했다.
여기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다. 세월호는 왜 하필이면 2017년 3월 23일까지 바닷속에 누워있어야 했을까. 오늘 하루종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지난 3년간 왜, 무엇 때문에 인양이 안됐는가". 무수한 의혹 뿐이다.
대통령이 탄핵뒤고 검찰 수사를 받은 이 시점에 배가 인양된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세월호 인양 작업을 보면 지난 3년 간 특정 시점부터는 언제든지 배를 인양할 수 있지 않았는가라는 상식적 의문이 든다. 시험 인양이라면서 불과 2~3일새 배를 건져 올리는 걸 보면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갖게 된다.
혹시 해수부는 탄핵으로 대통령이 물러가고 새정권이 들어서면 '인양 책임론'이 나올것을 두려워 해 인양 시점을 3월 23일로 잡은 건 아닌지. 또 전 정권에서 인양 지연 압력을 받아오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집권 세력이 사라지자 들어올린 건 아닌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작년 4월 총선 시점에도 세월호 인양이 가능했지만 집권세력의 정치적 압력때문에 인양이 지연된 건 아닌지 해수부 공무원에게 꼭 물어 그 답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