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100% 전력을? 그럼 부상 관리는? KBL의 난제

고양 오리온, "최선의 경기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KBL로부터 징계

김영기 KBL 총재가 2015-2016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고양 오리온의 주장 김도수와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 제공=KBL)

요즘 미국프로농구(NBA)에는 휴식(rest)이 잦다. 10월말 개막해 4월 중순까지 팀당 82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버티기 위해 감독이 주축 선수들을 정기적으로 쉬게 해주는 것이다.


우승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는 팀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이 낙관적인 팀들은 시즌 초반부터 선수단 관리에 신경 쓴다. NBA는 이틀 연속 경기를 뜻하는 '백-투-백(back-to-back)' 일정이나 5일동안 4경기를 치르는 일정 등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부상과 체력의 상관 관계는 무관하지 않다. 체력이 떨어지면 부상이 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정상권 팀들은 시즌 초반부터 주축 선수들의 강행군 소화를 최소화한다. 이틀 연속 경기를 펼칠 경우 둘째날 경기에 뛰지 않게 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시즌 막판이 되면 쉬는 선수들은 더 많아진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의 경우 순위가 결정되는 순간 주전들을 보기가 어렵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들은 베테랑보다 신예를 중용한다.

피닉스 선즈는 유망주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올스타 출신 센터 타이슨 챈들러와 베테랑 가드 브랜든 나이트를 이미 한달째 기용하지 않고 있다. 주전 2명을 빼다보니 경기력 저하가 불가피하지만 구단은 유망주를 키워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뚝심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구단주가 직접 선즈 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만약 최강의 선수를 기용해 최선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KBL 규약 제17조가 NBA에 적용됐다면 NBA는 오래 전 리그를 접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NBA 사무국도 타이트한 일정을 이유로 선수를 쉬게 하는 구단의 방침에 아쉬움이 많다. 그러나 강행군을 펼치는 구단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NBA는 최근 '백-투-백' 일정과 단기간에 다수의 경기를 펼치는 일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 시즌에는 정규리그 기간이 소폭 늘어난다. 올시즌이 끝나고 30개 구단과 함께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공식 서한도 보냈다. 연맹이 먼저 최선을 다한 다음에 구단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2016-2017시즌 NBA는 총 170일동안 팀당 82경기를 치르는 일정을 치른다. 한 팀이 2.1일당 1번 꼴로 경기를 치른다. KBL은 156일동안 팀당 54경기를 치른다. 2.9일당 1번 꼴로 경기를 치르는 스케쥴이다. 일정의 난도는 KBL도 만만치 않다.

고양 오리온은 지난 22일 전주 KCC와의 홈경기에서 주축 선수들을 대거 뺐다. 애런 헤인즈, 문태종, 이승현 등 잔부상이 있는 주축 선수들에게 휴식을 줬다.

그런데 오리온은 정규리그 우승 경쟁 중이었다. 우승 확률은 낮았다. 1위 안양 KGC인삼공사는 2경기를 남기고 매직넘버를 1로 줄인 상태였다. 오리온은 이미 4강 자동 진출을 확정지은만큼 포스트시즌을 대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부상이 있는 선수들을 쉬게 하고 그동안 출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선수들에게 코트를 밟고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줬다. 오리온은 83-100으로 졌다.

이에 KBL은 "당일까지 오리온은 KGC인삼공사와 정규경기 1위를 놓고 치열한 경합 중이었다. 승리시 정규경기 1위 가능성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23일 긴급 재정위원회를 열었다.

재정위원회는 추일승 감독에게 견책 및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하고 오리온 구단에게는 경고를 부과하기로 했다.

KBL은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이 정규경기 1, 2위를 다투는 경기에서 핵심 주전 선수를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을 시키지 않았고 정규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D리그에서 활약하던 비주전급 선수 위주로 출전시켰으며 4쿼터에 외국선수를 전혀 기용하지 않은 것은 최강의 선수로 최선의 경기를 해야 하는 규정에 명백히 위배되며 KBL 권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구단이 특정 선수를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리는 것은 연맹의 지나친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다. D리그에서 활약한 비주전급 선수의 1군경기 출전을 문제삼는 것은 D리그 존재의 이유를 의심케 한다.

KBL은 오리온-KCC전이 1위 경쟁 경기였기 때문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이 사실상 1위 경쟁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더라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KBL은 앞으로 NBA처럼 구단이 장기 레이스를 대비해 탄력적으로 선수단 운용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KBL이 이처럼 구단의 자율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영기 총재는 지난 2015년 6월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앞으로는 KBL이 구단과 감독, 선수에게 설명회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승부조작의 가능성을 지우기 위해 KBL 규약 제17조를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김영기 총재는 사실상 승패가 결정돼 주전들을 빼고 후보 선수들을 기용하는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을 없애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최강의 선수'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연맹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과 프로농구 경기에 대한 의심이 증폭했던 시기였기에 연맹도 오죽 했으면 그랬겠냐는 이해가 뒤섞였다.

그러나 장기 레이스에서 선수의 부상을 걱정하는 구단의 선수단 운용에 연맹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관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분명 구단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선수가 다쳐도 연맹이 보상해주지는 않는 법이다.

일정 편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일정의 난도를 줄이는 것이다. 모 구단의 감독은 시즌 중반 "가끔 일정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퐁당퐁당(이틀에 1번 꼴로 경기하는 것)이나 백투백이 몰리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한 경기를 하고 일주일 가까이 쉬기도 한다. 우리 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KBL 사정상 54경기는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는 지금도 나오고 있다.

결장이 확정된 선수가 나올 경우 이를 구단이 먼저 알리는 것도 팬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일 수 있다. 대다수의 미국 프로스포츠가 그렇게 한다. '최상의 선수'를 보고 싶어하는 농구 팬의 마음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구단은 54경기, 더 나아가 포스트시즌까지 꾸준히 최상의 전력을 농구 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관리는 필요하다. NBA에서나 KBL에서나 풀기 힘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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