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옥경 마담? 1913년 결혼한 할머니
-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은 3분.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정유헌(손병희 선생 외손자)
◆ 정유헌> 예,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이번 논란이 지금도 진행 중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유족들 드시겠어요.
◆ 정유헌> 너무 한탄스럽고 세상이 어떻게 이런 일을 갖다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 김현정> 이해가 안 가는 상황?
◆ 정유헌> 젊은 학생들을 상대로 역사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라는 아이들한테 올바른 역사인식을 알려주고 그렇게 해야 될 텐데. 아무리 학생들한테 흥미 위주로 가르친다고 해도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서 젊은 학생들한테 가르친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 김현정> 하나하나 그럼 좀 짚어보죠. 먼저 33인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인 태화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유헌> 이거를 33인을 갖다가 폄하하기 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흥미 위주로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어도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태화관이라는 곳이 원래 명월관이라는 요리집이 크게 있지 않습니까?
◇ 김현정> 명월관 유명하죠.
◆ 정유헌> 그 명월관 지점이 태화관이에요. 당시에는 태화관이 되기 전에는 이완용이 그 매국노 이완용의 별장이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나중에 불이 나가지고 요리사인 그 안순환이한테 그걸 팔아가지고 그게 태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요리집이 된 거죠.
◇ 김현정> 요리집이면 명월관의 지점이고 요리집이라면 말하자면 기생도 나오고 이런 집이었던 건 맞네요?
◆ 정유헌> 그건 맞는데. 당시의 시대 배경으로 보면 그런 데서 리셉션도 하고 유명한 사람들. 원래 매국노 이완용도 이토 히로부미하고 같이 거기에서 자주 만나 모임을 갖고 그랬답니다. 그런 요리집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런데 왜 굳이 거기에 모이셨을까, 이 부분인데.
◇ 김현정> 그렇죠.
◆ 정유헌> 그런 운동이기 때문에 태화관에서 하자. 학생들한테는 당시에 박희도 선생님하고 이갑성 선생님이 학생 대표들하고 연락을 계속 하는 상태였어요. 그게 태화관에서 하게 된 동기고.
◇ 김현정> 그러니까 자극하지 않기 위한 어떤 폭력적인 상황으로 벌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하나 있었고 또 태화관이라는 곳 자체가 뭔가 유흥을 즐기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조용히 좀 비밀스럽게 모이기 위한 장소였다 이 말씀이세요?
◆ 정유헌> 비밀스럽게 모이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태화관이라는 요리집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정유헌> 그런데 종교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수십 명이 한 군데에 모이게 되면 의심들을 하고 계속 헌병들이나 밀정들이 뒤따라 다녔거든요.
◇ 김현정> 눈에 띄는군요?
◇ 김현정> 그러니까 명사들이 모여서 모임도 갖는 것이고.
◆ 정유헌> 그렇죠.
◇ 김현정> 그런 곳이니까 거기는 의심하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옆방에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거는 무슨 얘기예요?
◆ 정유헌> 열혈 청년들이 진행 상황을 체킹해 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계속 탑골공원하고 연락을 했다고 그럽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러니까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 그러니까 만세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 일반 시민들이 있었고.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 있었고 그 중간의 연락책으로 학생들이 옆방에서.
◆ 정유헌> 그렇죠. 열혈 청년들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 김현정> 한 6명 정도? 그런데 지금 설민석 씨는 이게 낮술판에서 벌어진 뭔가 즉흥적으로 벌어진 뭔가가 아닌가로 설명하는 것을 유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 정유헌> 당연하죠. 그리고 3.1운동이 즉흥적으로 일어난 운동이 아니지 않습니까?
◇ 김현정> 일단 태화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고. 또 하나 강의 중에 이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태화관의 주인 주옥경 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손병희 선생과 내연관계였다. 그래서 할인해 준다고 하니까 태화관에 간 거다. 이 부분도 혹시 사실관계 좀 파악해 보셨어요?
◆ 정유헌> 파악이 아니고 주옥경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우이동에 계시면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도 살아 계셨고 1982년도에 돌아가셨어요.
◇ 김현정> 그래요? 많이 만나보신 분이에요?
◇ 김현정> 지금 주옥경 할머니라고 말씀하시네요?
◆ 정유헌> 그렇죠. 주옥경 할머니는 1913년도에 이미 손병희 선생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오십니다.
◇ 김현정> 1913년? 그러면.
◆ 정유헌> 19년 3월 1일이니까 그 전부터 이미 계셨고, 제가 가족 사진도 찍은 거 제가 가지고 있어요.
◇ 김현정> 그래요. 그러면 이 3.1 만세운동 벌어질 때 태화관의 주인이 놀러와라 했다는 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리다는 말씀이네요?
◆ 정유헌> 말도 안 되는 얘기고요. 제가 지금도 이렇게 이 말만 나오면 손이 떨리는데. 할머니는 더군다나 또 나중에 천도교 여성회 초대 회장이셨어요. 독립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하셨던 분이에요. 나이 23살에 손병희 선생님들한테 감동을 받아 나중에는 옥살이 할 때도 앞에 가서 뒷바라지 다 하시고 하셨던 분을 이렇게. 마담이라는 말 자체는 나쁜 말은 아니죠.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술집 마담이다 그러면 뭔가 좀 훌륭하신 분들을 갖다가 그렇게 폄하 발언을 한다는 것은. 옛날에 조선 총독. 마지막 총독으로 있던 아베 노부유키라는 놈이 있어요. 그 사람이 가면서 우리 일본은 비록 전쟁에 져서 총이나 대포는 놓고 가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너희들한테 조선에 식민사관을 심어놓고 간다. 너희들은 향후 100년 동안 서로 헐뜯고 이간질하고 이렇게 살 것이다, 노예처럼 살 것이다, 이렇게 무서운 말을 남기고 갔거든요. 식민사관이 뿌리예요. 저는 제 개인적으로 그렇게 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 김현정> 그런 생각까지 드세요? 아니, 그러면 주옥경 선생이 태화관 요리집을 운영하셨던 건 맞습니까?
◆ 정유헌> 아니죠.
◇ 김현정> 그거 자체도 틀려요?
◆ 정유헌> 네. 옛날에 기생을 조선시대 때 보면 세 가지 분류로 합니다. 1패, 2패, 3패 이렇게 하는데 1패 기생이라는 분은 평양기생학교를 정식적으로 수료를 하시고. 시나 이런 서화에 능해서 고관대작들이라든지 좀 배우신 분들하고 서로 이렇게 운문도 띄우고 운자도 띄우고 나눌 수 있는 학식이 많으신 분들을 갖다가 1패 기생이라고 하고요.
◇ 김현정> 기생이라는 의미가 지금의 술집 접대부하고는 좀 다른 의미였죠, 예전의 기생이.
◆ 정유헌> 굉장히 다르죠. 굉장히 다르죠. 그래서 할머니는 1패 기생으로 평양학교를 수료를 하셨고 그런 부분은 계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기생이라는 말을 갖다 지금의 무슨 술집 접대부,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 정유헌> 그걸 자수라고 표현을 했는데 자수가 아니고요.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시고 정식으로 대한민국 독립선언을 갖다가 일본 총감부에다가 연락을 한 겁니다. 통보를 한 겁니다, 통보를. 그렇게 또 나와요. 사료에 보면.
◇ 김현정> 통보를 한 거예요, 공식적으로. 우리 이런 걸 했다.
◆ 정유헌> 그렇죠.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통보를 하고 와서 너희들 관용차에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라. 이렇게 얘기가 된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니까 33인이 조용히 읽고 나면 일본이 모르는 거고 세상이 모르는 거니까 말하자면 세상에 공식화를 시켰다, 이런 말씀.
◆ 정유헌> 네, 또 관용차를 타고 가시면서도 독립선언서를 막 차 밖으로 뿌리시고 그렇게 가셨고 대한독립만세 외치셨다는 그런 말씀도 있으세요.
◇ 김현정> 그 33인 중에 상당수가 나중에 변절했다 이거는 어떻습니까?
◆ 정유헌> 말이라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은 3분의 2 이상으로 보통 받아들이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정유헌> 물론 변절하신 분이 있습니다. 1940년대에. 변절하신 분은 박희도 선생님하고 최린 선생님하고 정춘수 선생님 세 분이에요. 세 분이 변절한 건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인데. 이걸 갖다가 민족대표 33인 대부분 변절했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한용운 선생 하나만 빼고 다 변절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사실은 역사라는 것은 해석을 좀 다양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이 경우는 그 도를 넘어섰다라고 보시는 거예요?
◆ 정유헌> 그렇죠.
◇ 김현정> 논란이 있자 설민석 씨가 해명을 했습니다. 그 날의 사건 그러니까 3.1운동, 3.1 만세운동에 있었던 그날 사건 자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이게 민족대표 33인이 했던 모든 업적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상처 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런 일종의 성명서를 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유헌> 성명서 내기 전에요. 저희가 이거 무도한국사라는 책을 나온 걸 보고 발견을 하고 회사에다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A4용지 두 장 정도 팩스로 보내왔어요.
◇ 김현정>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내용이 담긴?
◆ 정유헌> 네. 재미있게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검증하지 못하고 표현이 지나쳤다 이렇게 하는데. 자, 보세요. 표현이 지나친 거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거하고는 차이가 많잖아요. 그리고 이것은 더군다나 명예훼손이에요. 사자 명예훼손입니다. 행패를 부렸다는 둥 술을 자시고 일본 경시청에 전화해서 나 병희야, 와서 나 술 취했는데 와서 데리고 가 이랬다는 둥.
◇ 김현정> 그런 내용까지 있었어요?
◆ 정유헌> 그럼요. 동영상에 보면 그런 게 다 나옵니다. 이런 부분은 출판물에 의한 사자 명예훼손이기 때문에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 김현정> 그러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고 어떤 법적인 조치까지 생각하세요?
◆ 정유헌> 그럼요. 민형사상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겁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손병희 할아버님이 이번의 이 해프닝을 하늘에서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모르겠어요.
◆ 정유헌> 허허, 그놈 참 황당한 놈이구나 하시겠죠.
◇ 김현정> 껄껄 웃으면서 마무리를 합니다만 유족들 속은 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이번 요사이였을 것 같습니다.
◆ 정유헌> 잠을 못 잤어요.
◇ 김현정> 잠을 못 주무세요? 여기까지 말씀 듣죠, 고맙습니다.
◆ 정유헌>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논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오늘 전후 사정 좀 살펴봤습니다. 유족 중의 한 분 정유헌 씨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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